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구(9) 응립여수
#1
몇 년 전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끼는 후배 사업가를 내 지인에게 소개했다. 분명 내 지인도 그 후배를 좋아할 거라 믿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 후배를 만난 후 내 지인의 반응이 의외였다.
“그 친구 참 독특하더만. 만나서 계속 자기 얘기야. 숨도 쉬지 않고 말야. 확신에 차 있는 건 좋지만 사람이 너무 꽉 차있고 여유가 없어서 1시간 미팅하고 나서 내가 지치더라”
오... 자기 확신이 뚜렷하다는 점을 좋게 봤는데, 다른 이의 눈에게는 달리 비칠 수도 있구나.
#2
컨설턴트인 키이스 페라지의 책 <혼자 일하지 마라>에 나오는 일화이다.
나는 피터 거버라는 친구에게 크게 한 방 걷어차인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인생에 변화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이었다.
피터는 영화 프로듀서이자 소니픽처스의 전 회장이다. 나는 그날 피터가 구상 중이던 책의 집필에 관해 조언을 해주러 그의 집에 들렀다.
거실에는 영화 ‘배트맨’의 주인공 마이클 키튼이 입었던 배트맨 의상을 비롯해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레인맨’ 같은 히트작을 제작한 공로로 받은 트로피 등 영화 관련 기념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딴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책에 관한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쏟아내는 데 온 정신을 쏟아 붓고 있었다. 갑자기 피터가 소파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3
“키이스, 자네는 좀 고상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고상? 책에 관한 내 조언이 너무 직설적이었나? 하지만 피터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사람이 아니었다. 고상하게 굴라니?
피터는 내 얼굴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 자상한 미소를 보니 그가 여전히 나의 친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키이스, 나는 자네의 그 얼굴 표정을 말하는 걸세, 자네의 옷이나 말투를 두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나는 목적과 행동의 고상함에 대해 말하는 거라네, 키이스, 고상함이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달성하는 기술이야. 자네는 지금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고 있어. 자네의 이메일은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더구먼, 안 그래도 대단히 똑똑한 사람인데 왜 그렇게 일에만 빠져 사는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자네가 발휘한 그 모든 노력과 재능을 고려한다면 자네는 지금의 모습보다 훨씬 더 성공했어야 하네.”
#4
“키이스, 나와 함께 이 문제를 풀어보세. 자네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최종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자네의 사업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는 있는 거야? 내가 보기엔 그게 분명하지 않은 듯해서 말일세, 자네의 그 초인적인 노력이 자네가 가려는 그곳에 잘 맞춰져 있다고 말할 수 있나?”
#5
키이스 페라지의 일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뜻한 바가 있으면 어떻게든 성취하려고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문득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췄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단도직입적이고 목적지향적인 태도가 타인에겐 여유 없고 공격적으로 비치지 않을지.
#6
테니스나 골프를 배울 때 자주 듣는 말이 “힘을 빼라”는 것이다. “충분히 힘을 빼야 (힘을 줘야 할 때) 제대로 힘을 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조언을 생리학적, 체육학적 관점에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스윙이나 스트로크를 할 때, 정확한 공격 포인트를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공을 타격할 때 적절한 힘과 강도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공을 치는 동안에 과도한 근력을 발휘하면 목표 지점과의 정확한 조합이 어려워지고, 이는 정확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우리 몸은 동작을 수행할 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정확성과 운동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그런데 과도한 근육 활성화는 필연적으로 근육 긴장과 불균형을 초래하게 된다. 스윙이나 스트로크 동안 과도한 근력을 발휘하면, 근육은 긴장되고 자세와 운동 조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적절한 힘을 사용하여 균형을 유지하면 자세와 움직임의 조절이 용이해지며, 정확성과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다.
#7
채근담에 보면 ‘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이란 말이 나온다.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라는 뜻이다. 고수는 안에 날카로운 것을 분명 갖고 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오히려 허술해 보인다는 의미다. 일전에 살펴본 <노자 도덕경>의 ’화광동진‘과 일맥상통한다.
중요한 것은 그냥 조는 듯 병든 듯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의식은 날카롭게 깨어 있어서 결정적인 기회의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일 때는 상대방이 긴장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힘을 빼라는 거다.
지난 시절에 힘 키우기만이 능사인 것처럼 살았지만, 진짜 중요한 힘빼기에 노력을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