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구들(8) 불영과불행
#1
벤처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 K씨는 경영상 큰 위기를 맞았다. 사소한 실수가 겹쳐져서 초래된 것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직원이 합심해서 노력하려던 순간, 우연히 소개받은 지인을 통해 그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었다. 소위 ‘인맥을 통한 사건 진화(鎭火)’에 성공한 것.
K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다. ‘인맥이란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우리들만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 일 이후 K씨는 인맥을 쌓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위기 모면의 경험이 너무도 강렬했던 것. 회사의 본질적 역량 강화보다 외부적인 관계형성에 너무 힘을 쏟는 게 아닌가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2
K씨는 어느 모임에서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큰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했다. 회사 역량에 비해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일을 성사시켜 줄 결정적인 힘을 가진 사람을 소개 받았다. ‘겉으로 볼 땐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정부 부처 핵심 공무원들만 잘 구워 삶으면 무난하니 걱정하지 마세요’는 그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진행했다. 꽤 많은 소개비도 건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일이 일그러졌다. 자기만 믿으라고 큰소리치던 그 실력자(?)는 자취를 감췄다.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거라는 기대 하에 마련해 두었던 자금, 인력, 제휴관계 들을 전부 원상회복시켜야했다. 하지만 그 절차가 만만치 않았다. 상당한 금전적인 피해도 감수해야했다. K씨는 결국 회사를 폐업하고야 말았다.
‘제가 무엇에 홀렸던 것일까요?’
자신에게 제기된 여러 건의 소송사건을 자문해주는 나에게 K씨가 던진 하소연이다.
#3
우리는 살면서 여러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그 어려움을 직시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정면돌파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큰 고생하지 않고 운 좋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누구나 그 방법을 택하고 싶을 것이다.
"요행 (僥倖) : 뜻밖에 얻는 행운“
요행을 바라는 것이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단순히 ‘요행을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 요행을 만나 어려움을 모면해 본 경험을 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 아닐까.
한 번 요행을 만나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해 본 사람은, 다시 곤란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요행을 바란다. 하지만 요행은 말 그대로 '뜻밖에 얻는 것'이다. 또한 내 실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철저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요행만을 바라던 사람은 요행이 제때 주어지지 않거나, 요행이 심술을 부리는 통에 종국에는 낭패를 맞게 될 수 있다.
#4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흐르는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그것을 메우지 않고서는 지나가는 법이 없다.’**
맹자 진심장구(盡心章句)에 나오는 말이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지 훌쩍 건너뛰는 법이 없다. 건너 뛸 수도 없다. 인생살이도 그러한 것이다.
#5
힘든 시간도 삶이다. 그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않고 어물쩍 지나가려고, 후다닥 지나쳐 버리려고만 한다면 그렇게 쌓아올린 삶은 장차 다가올 작은 타격 하나에도 무너져 버릴만큼 기초가 부실해 질 수밖에 없다. 구덩이를 힘들게 채워나가며 버텼던 시간들이 우리 삶을 지탱해 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내 주위 누군가가 요행을 만났다고 부러워하지도 말자. 그 요행이 그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복(福)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쩌다 요행을 얻었다고 자랑하거나 들떠 하지도 말자. 우연히 얻게 된 유리한 조건들을 자랑하는 것은, 허약한 정신의 속성이다.
‘요행’
생각할수록 참으로 요사스럽고 무서운 말이다.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목록 1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