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구(30) 다다익선
#1
P사의 김이사는 P사의 영업실적 대부분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활달한 성격에 특유의 친화력, 추진력이 그의 장점이다.
P사 대표이사는 공학박사 출신의 윤대표.
차분한 성격에 말 수도 적어서 왠만해서는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편이다.
**“뭐.. 사실 아무리 제품을 잘 만들어도 잘 팔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 아닙니까? 그리고 잘 만들었다고 잘 팔리는 것도 아니거든요. 문제는 영업입니다. 영업!”**
한 번씩 회의를 할 때 마다 김이사는 P사의 핵심역량은 윤대표의 기술력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영업력이라는 식의 과시를 자주 했다.
그런데 P사 다른 간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이사는 회사 내에서도 공공연히 그런 이야기를 떠벌인다고 했다.
#2
항우를 해하전투에서 격파하고 중원을 통일해서 한나라를 건국한 한 고조 유방.
어느 날 대장군 한신과 한 잔 하면서 좋은 기분에 그에게 한 마디 물어본다.
“장군, 내가 만약 장군처럼 병사를 거느린다면 몇 명 정도 거느릴 수 있겠소?”
그러자 정치감각 없는 한신은 잠깐 고민하더니 솔직 담백하게 말한다.
“한, 10만 명 정도는 거느릴 수 있으실 겁니다.”
“오호, 그래요? 그럼 대장군께서는 몇 명 정도 거느릴 수 있으신가요?”
한신은 여전히 정치감각 없이 툭 내뱉는다.
“저요? 전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多多益善(다다익선)입니다.”
#3
‘뭐라?’
유방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그렇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10만의 장수감에 불과한 과인의 부하가 되었는고?"
그러자 상황파악을 한 한신은 서둘러 이렇게 대답했다.
#4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수가 아니오라 장수의 장수이시옵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부하가 된 이유의 전부이옵니다. 또 폐하는 이른바 하늘이 준 것이옵고 사람의 일은 아니옵니다."
싸움의 신이었던 한신이 보기에 유방은 도저히 자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으리라. 솔직한 발언이 가져온 어색한 분위기를 돌려보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듯. 유방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 부분에서 대장군 한신의 ‘자기과시욕’과 ‘전후 좌우를 살피는 미세한 감각의 부족함’을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일화이다.
결국 한신은 유방에 의해(더 정확히는 그 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토사구팽’(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사실 한신의 처세에서는 그의 좋지 않은 말로(末路)가 예견되고 있었다.
#5
정기 인사 때 윤대표는 김이사에 대해 전격적인 인사조치를 취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김이사는 P사를 퇴사했다.
김이사는 내게 말한다.
“그 회사 내가 다 키웠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내팽개치다니. 토사구팽이 따로 없습니다.”
나는 김이사를 위로했지만, 김이사가 자초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따로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만을 과시하는 우리에게 사마천은 ‘다다익선’ 일화를 통해 신중하고도 사려깊은 처세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