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Touch]
#1
초딩 때 방학이면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갔다. 배부르게 점심 먹고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발이 간지러워서 눈을 떴다. 할부지가 내 발을 계속 만지고 계셨다. 발바닥, 발등, 발목, 종아리, 또 발목, 발등, 발바닥. 그냥 손으로 계속 조물딱 조물딱.
우리 할부지... 진짜 근엄한 선비 스타일. 아주 과묵하시고. 감정표현도 거의 없는.
난 어렴풋이 ‘이게 할부지의 애정표현인가?’ 싶었다. 차라리 용돈이나 주시지.
#2
10여년 전 어느날, 둘째 딸래미가 마루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 난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새하얀 딸래미의 발을 쓰다듬었다. 잠을 깨울까봐 조심하면서 발을 만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3
경상도 남자들이 다 비슷한데, touch를 잘 못한다. 특히 부모님을 만나도 그렇다. 여동생들은 부모님을 안기도 하고 팔짱도 끼고 하는데, 난 그래본 적이 별로 없다.
오늘 몇 달만에 어른들을 뵈러 갔다. 난 의식적으로 어른들을 touch하겠다고 마음먹고 갔다. 아버지랑 식사하러 나갔을 때는 손도 잡고, 허리에 손도 두르고, 괜히 ‘아버진 피부가 진짜 좋으세요’라면서 팔목을 쓰다듬기도 했다.
몸이 안좋으셔서 외출을 못하시는 어머니에게는 (진짜 내 평생 이런 경험이 별로 없었는데) 뒤에서 허그 비슷하게 하고(나도 좀 움찔했다!), 어깨를 주무르듯 만지기도 하고, 대화를 하다가 괜히 손을 만지기도 했다.
#4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touch가 주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낯 간지럽게도 생각되었는데, 내 자식에게 기꺼이 하는 touch를 내 부모님께는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점점 소프트화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