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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고객감동: 상담에서 승리하는 전략

인사이드 로펌

by 조우성 변호사

오늘도 친구의 소개로 어느 기업체 사장님이 사건 상담을 하기 위해 오시기로 했다. 변호사로서는 이러한 상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결국 그 사건을 수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의뢰인 입장에서는 중요한 사건일수록 여러 사무실을 방문하여 가능한 한 많은 변호사들로부터 의견을 취합한 후 최종적으로 변호사 선임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어느 변호사가 상담을 한다고 해서 그 사건을 바로 수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담 과정에서 의뢰인에게 믿음과 확신을 줘야만 사건 수임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환자가 되어 병원에 갔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의뢰인을 대하곤 한다. 병원과 변호사 사무실은 묘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누구를 막론하고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난 무지 아픈데, 이거 혹시 암이라도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감.

의사에 대한 인상은 첫 대면에서 결정된다. 아무런 반응 없이 무심한 얼굴로 챠트를 읽고 형식적인 몇 가지 질문을 한 다음 처방을 하고는 “3주 후에 오세요”라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면, 환자로서는 정말 답답하고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사가 있다면 어떨까.

우선 걱정하고 있는 환자에게 “많이 아팠지요? 고생 좀 하셨을 것 같습니다. 병원 오시는데 영 불안하셨지요?”라고 운을 뗀 다음, 현재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설명해준다. 좀 더 자세한 것은 정밀진단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단 드러난 상황을 갖고 충분히 설명해 준다. 이 시점에서 환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과연 내가 나을 수 있는가, 치료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전체적인 시간과 비용은 어느 정도 소요되는가 하는 것들이다. 의사는 바로 이러한 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줌으로써, 환자에게 자신이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투병생활의 전체적인 view를 갖게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를 믿고 열심히 치료하시면 반드시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마음의 병이 더 무서운 거죠. 힘내시고, 3주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끝마무리를 한다면 환자는 얼마나 그 의사를 신뢰할 것이며 용기를 갖겠는가.

나 역시 여러 번 병원에서 환자의 경험을 해 보면서, 변호사로서 Client에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를 고민했었고, 그 고민의 결과 이제는 나름대로 Client를 대하는 하나의 process를 갖게 되었다.

오늘도 내가 늘 하던 방식으로 상담을 했다. 가능하면 실제 상담을 하기 전 날, 소개해 준 사람을 통해서 상담 할 내용이 어떤 것인지 먼저 전화나 FAX를 통해 받아보는 것이 좋다. 이러한 사전 준비가 있으면 훨씬 상담내용이 충실해지기 때문이다. 상담실에 들어가서 인사를 나눈 후에는 사건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느냐는 식의 덕담을 나눈다. 그리고 누구나 이런 분쟁에 휩싸이게 되면 심적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지금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고통의 경험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리고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일단은 질문을 하지 않고 의뢰인의 설명을 다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관련 자료들까지 달라고 해서 일단 검토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다. 이 시점부터 변호사의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다. 여러 사건을 접하다보면 의뢰인의 장황한 설명 가운데 핵심이 무엇인지를 끄집어 내는 능력이 생긴다. 실체 파악을 위해 필요한 질문들을 몇 가지 던진다. 그럼으로써 정확한 사실관계를 최단시간 내에 파악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뢰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소송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협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사건에 대한 파악만을 원하는 것인지 등등.

일단 이러한 점이 모두 파악되면, 설명에 돌입한다. 사건의 쟁점, 소송으로 갈 경우의 승소 가능성(이 경우 가감없이 우리의 패소 가능성에 대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향후 발생하게 될 절차의 내용, 비용, 소요시간 등이 그 내용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설명을 한 후 잠깐 내 방에 와서 5분 이내에 방금 내가 말한 내용을 문서로 작성한다. 일종의 처방전과 같은 것이다. 막상 변호사가 한번 설명을 해도 돌아서면 법률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인 의뢰인은 변호사의 설명을 전부 기억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법률처방전’을 제시하는 것은 의뢰인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절대 그 사건을 나에게 맡겨 달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분석한 후 의뢰인의 유 · 불리를 냉정하게 설명해 준다. 일부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을 위해 의뢰인의 불리한 부분을 굳이 부각시키지 않고 무조건 승소할 수 있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사건을 수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만약 비용이 과다하다고 생각하면, 다소 D/C를 해주기도 하지만, 나 역시 대형 로펌에 소속되어 있다보니 D/C의 재량권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럴 경우에는 다소 저렴한 가격에 사건을 수행할 수 있는 후배 변호사에게 소개를 시켜 주기도 한다. 하지만 상담결과에 만족을 하면 굳이 다른 사무실로 가는 것보다는 내게 사건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을 상담할 경우, 정말 그 의뢰인을 걱정하고 그 의뢰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상담을 진행하면 다소 비용이 고가이더라도 사건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사건 수임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의뢰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객관적이고 냉철한 의견을 줄 경우 사건 수임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 과연 이 변호사가 사건 수임에만 관심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의뢰인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배려가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뢰인들이 더 빨리 파악한다. 변호사가 아무리 이를 위장하려 해도 그 진심은 곧 드러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고객감동’은 최초 상담 시부터 적용되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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