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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 너머의 변호사: 10년의 송무 이야기

인사이드 로펌

by 조우성 변호사


이제(2005년 기준) 변호사 생활한 지도 10년이 가까워져간다. 변호사의 삶이라는 것이, 특히 나 같은 송무변호사의 삶은 끊임없는 승소와 패소의 연속이다. 어떤 의뢰인은 나에게 ‘승률이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어보곤 한다.

TV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멋진 변호사들을 소개할 때는 항상 주위 사람들이나 비서들이 ‘저 변호사는 전설적인 승률의 보유자야. 40전 39승. 그리고 나머지 1건도 조정으로 끝난 사건인데 사실상 승소나 다름 없데. 호호호~~’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본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닐까.

변호사에게 있어 승률이란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처음부터 승률이 아주 낮은 사건이 있는 반면에, 상대방의 주장이 턱없이 말도 안되는 것이어서 큰 무리 없이 승소가 예상되는 사건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산술적인 승률보다는 구체적으로 수행한 사건이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었느냐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변호사끼리는 하는 말이 있다.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은 지지 말아야 할 사건을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즉, 변호사는 질 수밖에 없는 사건을 억지로 이기도록 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지지 말아야 할 사건은 이기도록 해야 한다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승소개념을 가지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지지 말아야 할 사건이야 당연히 승소하는 것이 맞지. 그런 당연한 일을 하는데 굳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소송할 필요가 뭐가 있나? 질 사건도 이기도록 해 줘야 변호사를 돈 들여 선임한 보람이 있지..’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연히 이겨야만 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이기는 것이 정의에 부합됨에도 불구하고) 소송수행을 잘못해서, 또는 작은 오해의 벽을 넘지 못해서 민사사건에서 패소하거나 형사사건에서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뢰인 입장에서도, 자신에게 잘못이 있는 사건의 경우, 승소하게 되면 대단히 기뻐하면서도 뭔가 겸연쩍어 하는 반면, 패소한 경우에는 겉으론 화를 내지만 속으로는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 눈에는 보인다. 하지만 정말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은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음으로 인해 패소하거나 유죄를 선고받게 되면 피를 토하는 심정이 된다.

변호사로서도 가장 뼈아플 때가 지지 말아야 할 사건을 패소했을 경우이다. 나의 의뢰인이 분명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부족해서, 또는 소송기술의 미숙으로 인해 충분히 재판부에 우리의 주장이 전달이 되지 않아서 패소하게 되면 ‘과연 내가 변호사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에 빠져들게 된다.

더욱이 그런 류의 패소가 몇 번 겹치게 되면 자신감과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면 슬럼프로 이어지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슬럼프를 몇 번 겪었다. 사랑으로 인한 상처는 사랑으로 치유된다던가.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패소로 인해 입은 상처는 다른 사건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어 의뢰인과 뜨거운 악수를 나누면서 치유된다.

나는 현재 70여건의 소송사건을 진행 중에 있다. 저 사건들도 언젠가는 판결이 선고될 것이다. 어떤 사건은 승소로, 어떤 사건은 패소로. 이미 현 단계에서 패색이 짙은 사건도 있고, 승소가 무난해 보이는 사건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판결을 선고받기 전에는 결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해 본다. 결과는 하늘이 주시는 것. 변호사로서는 마지막까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밝히면서 정당한 범위 내에서 의뢰인의 승소를 위해 노력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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