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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요즘 법원에 접수되는 소송 사건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는 실제 변론기일에 가서 법원에서 진행되는 사건 수를 보더라고 실감한다. 일본, 미국과 비교해 볼 때 인구당 소송사건 수는 우리나라가 월등히 높은 편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일본과 미국은 협상문화가 성숙되어 있어서 굳이 재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사자들 간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우리나라는 협상문화가 발전하지 못해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일본과 미국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고 간편한 우리의 소송제도가 소송건수를 급증시키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 평균 사건 진행속도나 변호사 비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느리고 비싸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변호사 비용이 보통 착수금, 사례금 방식이 아닌 Time-Charge방식인데, 변호사들이 자신의 시간당 비용을 기준으로 비용을 청구하다 보면 오히려 소송물 가액보다 변호사 보수가 더 많이 나오게 되어 사건 당사자들이 ‘결국 변호사만 좋은 일 시키는 것 아니냐’면서 서로간에 합의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고비용에다가 비효율적인 재판제도가 소송의 남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대법원 사이트(www.scourt.go.kr)의 ‘나의 사건검색’ 메뉴를 이용하면, 현재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마 이와 같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나라는 흔치 않을 것이다. 또한 몇 년 전부터 법원이 강한 의지로 추진하고 있는 ‘집중심리제’로 인해 쟁점이 복잡하지 않은 사건은 최초 소제기부터 6-7개월 이내에 1심 판결이 선고되는 추세다. 변호사들은 이처럼 바뀐 법원의 Speedy한 재판진행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재판준비를 해야 한다. 변호사가 제 때 적절한 주장을 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실기한 공격 · 방어방법의 각하’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휘두르기 때문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작년에 일본의 A사와 네덜란드의 B사간에 벌어진 특허 분쟁 사건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A사를 대리했는데, 이러한 유형의 사건은 몇 개국에서 동시에 사건이 진행된다. 이 사건 역시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이미 재판이 상당 기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우리나라 법원에 사건이 계류되었다. 당시 변론 준비를 위해서 재판이 계류 중인 관련국 변호사들이 모두 참석한 화상회의에서 재판 전략에 관한 회의를 하였다. 각 나라별로 주장이 서로 달라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 나라에서 판결이 나면 그 판결이 다른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처음 내가 사건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이미 1년 넘게 재판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미국이 가장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다른 나라 변호사들은 미국 변호사들의 전략에 따라가면 되었고, 결과도 사실 미국 재판에 좌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승패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다. “미국에서 졌기 때문에 우리도 진걸요...”라는 면피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에서 재판이 진행되면서 불과 몇 달만에 우리나라 법정에서의 재판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결과가 되었고, 관련국들의 모든 변호사들은 우리 사무실의 전략에 대해서 질의하였으며, 결국 우리나라에서의 재판결과가 다른 나라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태로까지 비화되고 말았다. 느긋하게 재판의 추이를 바라보던 나로서는 피가 바짝바짝 마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사자들간에 대타협을 보아 모든 소송을 취하하면서 잘 끝났기에 망정이지.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왠만하면 법으로 해결하자는 풍조가 더 거세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