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로펌
어제 우리 사무실의 J변호사가 태평양을 떠나게 되었다면서 각 변호사실을 돌며 작별인사를 했다. 갑자기 듣게 된 소식이라 나도 깜짝 놀랐는데, 알고 봤더니 세계적인 보험회사 M사의 Chief Legal Officer(CLO, 법무이사)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J변호사는 태평양에 있으면서도 평소 깔끔한 일처리로 주위 변호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M사에 가서도 아마 탁월한 일솜씨를 뽐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전에는 변호사가 되면 반드시 자기 사무실을 열거나 아니면 합동법률사무소 또는 로펌에서 일하는 것만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이러한 전제도 많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사법연수원를 수료하면서부터 아예 회사의 사내변호사(in-house lawyer)로 입사하는 경우도 많으며, 기업체에서도 경력직 변호사를 좋은 조건으로 초빙하는 일이 흔해졌다. 특히 ‘법률신문’을 보면 기업체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경력 변호사를 초빙한다는 광고를 종종 접하게 된다. 또 내 의뢰인 회사에서도 나에게 사내변호사로 적절한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는 부탁도 많이 한다.
1-2년만 지나면 왠만한 규모의 기업에서는 1명 이상의 사내변호사를 두는 것이 일반화될 것 같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기업과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그 기업에 사내변호사가 있으면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 아무래도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해도가 빠르기 때문에 원활한 communication이 가능하며, 나아가 사내변호사들은 사외변호사들이 겪는 변호사로서의 고충을 이해해 주기 때문에 인간적인 친밀도도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변호사 입장에서는 사내변호사라는 까다로운 시어머니(?)가 있으므로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는 훨씬 더 긴장하는 측면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사무실의 대표변호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로펌의 기능 중에는 우수한 인재를 트레이닝해서 경력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사회 곳곳에 공급하는 기능도 있다고 말이다. 즉, 이제는 한 로펌에 입사하면 변호사 생활 끝마칠때까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로펌에서 열심히 전문분야에 대해 숙련기술을 익힌 다음 그러한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국가기관이나 기업체에 가서 실력을 발휘하는 것도 법률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는 말씀이셨다. 우수 인력의 외부유출이라는 측면도 분명 있지만 대승적인 관점에서는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 우리 태평양만 해도 최근 2-3년간 몇 명의 변호사들이 국기기관이나 은행, 다국적 기업에 스카웃되어 갔다. 이처럼 태평양에서 근무하다가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그 변호사들은 태평양을 ‘친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태평양에게도 Client를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선배 변호사님들은 이렇게 후배들이 다른 곳에 스카웃되어 가면 ‘시집 보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신다.
다만, 변호사들이 사내변호사로 스카웃 되어 간 이후, 막상 그 회사의 문화와 정서에 잘 동화되지 못해서 본인 스스로 어려움을 겪거나 해당 회사의 임직원들이 다소 불편해 한다는 일부의 평가를 들을 때도 있다. 아무래도 변호사는 전문직종이다 보니, ‘마음에 안들면 개업하면 되지 뭐’라는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고, 그렇다 보면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일반 직원에 비해 다소 떨어질 수 있는데, 사내변호사들의 이러한 행동은 일반 직원들로서는 이질감 내지 위화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아주 일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서 기업체에서 사내 변호사를 선정하려고 할 때는 바로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여,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화(人和)할 수 있는 성품을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변호사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처럼 변호사의 직역이 다양화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법 이외의 지식도 틈틈이 갖출 필요가 있으며, 원만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성품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