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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금 독촉의 예술: 변호사의 점심 후 전략

인사이드 로펌

by 조우성 변호사

책상 위에 “송무 미수금 리스트”가 올라와 있다. 그 동안 내가 수행한 소송사건 들 중 아직까지 당사자가 착수금이나 사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연체 내역을 기재한 리스트이다. 총무과에서는 개별 변호사들에게 1달에 1-2번씩 이런 리스트를 보내주고는 의뢰인들에 대한 미수금 입금독촉을 요청한다.

“소송 열심히 하면 뭐하냐. 소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금이야, 수금”. 선배변호사들이 농담처럼 하는 얘기지만 실제 미수금 문제는 변호사사무실의 큰 문제이다.

열심히 일하다가 이런 리스트를 받아서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힘이 쭉 빠진다. 특히 사건을 처음 맡길 때부터 ‘이 사건은 정말 회사의 운명이 달린 건입니다. 다른 어떤 사건보다 중요하게 다뤄주십시오.’라면서 신신당부하고, 또 중간 중간 전화를 걸어 엄청나게 들들볶던 사건인데, 막상 착수금조차 입금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아니, 이 사람이...’라면서 입맛이 씁쓸해 지기도 한다.

특히 기업 고객이 아닌 개인 고객들이 대부분인 변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성공사례금은 거의 받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착수금은 말 그대로 승패와 상관없이 일에 착수하면서 받는 것인데 반해, 성공사례금은 원하는 결과가 도출되었을 때(승소판결이나 유리한 조정결정을 받았을 때) 받게 된다. 착수금은 사건을 처음 맡기는 시점에 지불해야 하는 것이어서 대부분 잘 입금되지만(만약 입금이 안되면 변호사들은 일에 착수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사례금의 경우는 이미 결론이 잘 나온 상황이므로 이제 당사자 입장에서는 급할 것이 없어서 그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변호사들은 악착같이 성공사례금을 받아내기 위해서 별도로 소송까지 진행하지만, 이는 극히 드문 케이스이고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그냥 포기한다고 한다. 변호사들이 정작 자신의 권리 주장에는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일반직원들이 아니라 변호사들로 하여금 직접 미수금 독촉을 할 것을 권유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반 직원들이 미수금 독촉을 하면 의뢰인은 ‘소송비용이 비싸다’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그 사건을 수행하면서 의뢰인과 많은 회의를 하고 같이 법정에도 나갔던 변호사가 ‘흐.. 김사장님. 저희들도 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사건 처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누구보다 김사장님이 잘 아시면서 변호사 비용을 입금 안 해 주시면 전 정말 힘이 빠집니다’는 등의 하소연을 하면, 의뢰인은 아무래도 변호사 보기 민망해서 직원들이 요청하는 경우보다 입금을 잘 해준다.

‘소송수행하는 것만 해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미수금 독촉까지 해야 하나’면서 처음에는 나도 불만이 있었지만, 요즘은 이런 미수금 리스트가 날아오면 1분간의 명상을 거친 후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 걸 순서를 정한 다음 가급적 점심식사 직후 시간에 맞춰서 의뢰인에게 전화를 한다. 아무래도 식사시간 직후면 포만감 때문에 사람들이 다소 너그러워 지기 때문이다.

“어이구, 김부장님, 잘 계시죠~~ 저도 덕분에 잘 지냅니다. 지난 번 소송, 정말 김부장님 덕택에 잘 끝난 것 같아요. 변호사로서 여러 의뢰인이 있지만 우리 김부장님처럼 변호사 supprt를 잘해주시는 분은 없으신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김부장님은 이제 변호사 하셔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허허허.. 그런데 말이지요~~.... 거 성공사례금이 아직 입금이 안되었네요. 허허허...···(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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