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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보다 중요한 식사

인사이드 로펌

by 조우성 변호사


변호사 업계도 경쟁이 치열해져서 사건 수임과 관련해 변호사들의 고민이 많다. 우리 로펌은 개별 변호사들에게 신년 사건수임 계획을 작성해서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 역시 과연 올해는 어떤 식으로 사건 수임 관련된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나에게 든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나의 의뢰인들을 만나면서 너무나 ‘사건 위주’의 만남만을 가져왔었던 것 같다. 즉 ‘사건’이 발생한 의뢰인들이 내 사무실을 방문하면, 나는 그 분들과 ‘사건’에 대한 논의를 하고, 철저히 ‘사건’ 위주의 대화를 한 다음 그 미팅을 끝마친다. 그 뒤에 의뢰인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그 ‘사건’의 사후 경과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문의하기 위함이었다. 철저히 ‘사건’에 포커스를 맞춘 만남이었다.

그러나 이런 만남만을 지속하다보니 그 의뢰인과의 관계가 인간적으로 깊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의뢰인에게 비치는 내 모습은, 너무 일만 열심히 하고 전혀 여유가 없으면서 시간을 금쪽같이 여기는 살벌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뭔가 중요한 게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냄새’다.

작년 연말에 내가 참으로 감명깊게 본 책이 “혼자 밥먹지 말라(Never eat alone)”(키이스 페라지 著)라는 인간관계론에 관한 책인데, 그 책을 보면서 내가 범하고 있는 오류를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냥 껍데기 인간관계만을 가져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나는 수많은 의뢰인들은, 의뢰인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고, 직장인이며, 아버지로서 자식교육에 대한 걱정도 있고, 지병으로 인해 건강에 대해서도 관심많은 ‘살아 있는 인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입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도 갖지 않은 채 사건만을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형식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같이 밥을 먹으면서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라고 권유한다. 그 사람이 내게 도움이 될 사람일지 아닐지를 너무 계산적으로 따지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그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아주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라고 권유하고 있었다. 난 그 말이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연초부터 내 의뢰인들(대부분 기업 법무팀 임직원들)과 연락을 취해서 부지런히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있다. 사건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고, 가족문제, 건강문제, 올해의 목표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만을 나누었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헤어지니, 그들로부터 사건 의뢰가 더 많아지는 것이었다. 어차피 기업에서는 계속적으로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자기들로서는 인간적인 유대관계까지 갖춘, 그래서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들과의 통화를 통해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그 효과는 빠르고 즉각적이었다. 나 자신도 놀랄 정도다.

역시 모든 일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 따뜻한 마음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사건 이외의 일을 이야기하려고 보니 틈틈이 책도 보면서 풍부한 화제거리도 마련해야 하는 부담감은 있지만 그 자체도 신나는 지적 모험이다. 작은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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