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21) conflict of interest (1)
#1
내 방에서 일을 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피곤했었나. 그런데 방문이 살포시 열렸다. byh가 들어왔다. byh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그러더니 자신의 윗도리를 벗어 내 어깨에 둘러준다. 그리고는 나를 토닥토닥 두드리고는 샤르르 방 밖으로 나간다.
뭐지? 난 왜 이 장면을 위에서 보고 있는 거지?
#2
음냐... 꿈이었다. 뭐야, 사무실에서 만나는 것도 모자라 이제 꿈에서도 나타나? byh가? 이건 대체 무슨 꿈이람? 꿈은 잠재의식의 현출이라 그랬는데. 뭐지? 나는 집현전 학자고 byh는 세종대왕이란 말인가?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웃겼다.
나는 이 꿈이 재미있어서 내 비서에게 말해줬다. 비서도 아주 재미있게 듣더라,
정확히 30분 뒤 갑자기 내 방이 콱 열리더니 거기에 byh가 인상을 쓰고 서 있었다.
난 완전 긴장.
“니! 내 한테 돈 안 주나?”
“네? 무슨 돈,,,”
“출연료 말이다. 출연료!”
아니 저 양반이 무슨 말인 거지?
“니 꿈에 내가 등장했대매?”
아, 우리 비서. 진짜 입 싸다. 그새...
“조변호사, 귀엽네. 호호호” 꺄르르 웃으며 byh가 사라졌다.
#3
며칠 전부터 검토하고 있는 사건이 있다. 내 대학 친구가 두물기공(주)이라는 회사의 법무팀 직원인데, 조흥은행과의 거래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사건이었다. 주장하는 손해 금액이 꽤 컸다.
사실 2년차 변호사가 신건을 수임할 의무는 없지만, 신건을 수임한다고 해서 로펌이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주니어가 사건을 수임해봐야 별 소득은 없지만 파트너가 사건을 수임하면 본인 보너스에 크게 반영이 된다. 나는 이 사건을 잘 쿠킹해서 byh에게 드리고 싶었다. 내가 수임한 사건이지만 byh께 바칩니다. 뭐 이런 컨셉으로. 뭔가 내가 보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리라 생각했다.
그 친구와 몇 번 통화하고 자료를 받다보니, 이 사건은 조흥은행 측의 내부 업무규정을 파헤쳐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그건 소송과정에서 문서제출명령을 통해 받아볼 수 있다. 일단 기초적인 자료검토를 마치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침을 준다음 기회를 봐서 byh에게 이 사건을 진상(進上)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4
“조변호사, 빨리 대회의실로 와봐!” 인터폰으로 byh가 나를 호출했다. 자기 방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대회의실로? 무슨 일이지?
나는 byh 비서에게 달려갔다.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봤다. 비서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조변호사님, 조흥은행 상대로 하는 사건 상담하셨었어요?”
아...그 친구 사건. “예, 수임해 볼려고 준비 중인 사건인데.”
“그거 컨플릭트 체크 안 하셨죠?”
컨/플/릭/트? 아... 뭔가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안그래도 며칠 전에 인트라넷에서 “조흥은행 상대로 상담한 변호사 블라블라”라는 게시물이 떴었는데, 나는 제목만 덜렁 읽고 내용은 클릭하지 않았다.
컨플릭트라.
우리 로펌이 거래하는 기업을 상대로는 소송이나 자문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 이건 변호사법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솔직히 나는 주니어였기에 사건을 수임할 필요는 없었고, 선배들이 던져주는 사건만 처리하다보니 컨플릭트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5
대회의실에는 금융파트의 서 변호사, 한 변호사, 그리고 byh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나는 엉거주춤 회의실로 들어섰다.
서 변호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조변. 자넨 변호사가 말야 컨플릭트 체크도 안하고 일 해?”
한 변호사가 이어 말했다.
“조흥은행이 우리 로펌에 얼마나 중요한 고객인지 몰라? 하기야 잘 모를 수도 있겠지. 소송은 별로지만 자문건이 엄청나게 많아. 그리고 앞으로 중요한 M&A Deal도 따 올려고 노력 중인데. 지금 김앤장과 세종, 우리가 계속 입질 중이라고.”
byh가 두 선배에게 말했다.
“조변호사가 사건 수임을 처음 해보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거 같은데... 조흥은행 측은 강경합니까?”
서 변호사가 말했다
“말도 마. 거기 법무팀장이 난리가 났어. 아니 어떻게 자기네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려는 사람에게 태평양 변호사가 자문을 할 수 있냐면서. 부행장까지 보고 했대.”
“이거, 만약 M&A Deal을 날리면 그 손해는 최소 5억이야. IP팀 1년 매출의 몇 배라구. ”
난 머리가 하얘졌다.
이거 완전 대형사고네....
byh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영혼 없는 눈빛이었다.
-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