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byh 버텨내기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20) byh 버텨내기



#1


황보영 변호사(byh)와 일을 하다보니 왜 주니어들이 힘들어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IP파트 일이 특히 어려운데 그 어려운 일을 빨리 정확하게 처리해야만 했고, byh는 작은 실수도 용납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나는 byh로부터 계약서 검토에 대한 방법을 많이 배웠다. 사실 변호사 되기 전에는 계약서를 검토해 본 일이 없었고, 변호사가 되어서도 계약서 검토를 할라치면 문구 위주로 대략 파악해서 수정해 주는 수준이었다.



#2


처음에 몇 번 계약서 검토 건을 처리했더니 byh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조변이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 건 아는데, 내가 몇 번 고쳐줬잖아? 선배가 뭘 고쳐주면 다음 번에는 똑같은 실수를 안해야 하잖아? 근데 왜 발전이 없지? 넌?”


아주 호되게 야단을 쳤다.



“계약서를 검토할 때는 그 계약이 전제하는 거래관계를 머리 속에 먼저 그려보라구. 갑과 을이 서로 어떤 거래를 한다... 그리고 그 거래가 잘 나가다가 빠그러지는 상황을 다시 그려보라구. 아, 그런 상황이 되면 우리 의뢰인은 어떤 점이 골치 아플까? 이런 시뮬레이션을 해야지.”



“그리고 계약서 서류만 보고 검토하지 말라고 그랬잖아. 의뢰인에게 전화해서 물어봐. 이 계약서에서 뭐가 걱정이 되는지, 또 회사는 이 거래에서 협상력(nego power)이 강한지 약한지. 그런 정보들을 네가 먼저 파악하고 그것까지 반영해서 내게 검토보고서를 올려야 선배가 그 점을 감안하여 최종 검토를 하지 않겠어? 넌 내 시간을 줄여줘야 하는데, 그게 전혀 안되잖아?”



“우리 돈 받고 일해. 그것도 비싸게 받고 일한다고. 그리고 우린 태평양 이름을 걸고 일을 해. 우리가 계약서 검토한 내용을 의뢰인이 받아보고 감동을 해야 하지 않겠어? 아. 역시 태평양 변호사들은 다르구나.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어? 이건 자존심의 문제야. 우리 이름으로 나가는 의견서는 우리 얼굴이라고!!!”



#3


2건에 1번씩 이런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근데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byh는 딱 필요한 지적을 한다. 내가 반박할 수 없었다.


사실 내가 변호사를 시작할 때 ‘과연 앞으로 어떤 변호사가 되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여러 가지 기준과 목표가 떠올랐다.


그런데 2년차 때 그 기준이 명확해졌다. 아주 심플했다.


‘byh에게 지적당하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해 내자. 그럼 된다.’


진짜 그랬다. 다른 기준 필요 없었다. byh가 만족할 만큼만 일한다면 그건 훌륭한 수준일 것이리라. 이렇게 마음 먹고 나니 나는 byh와의 업무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야단치면 기분 나쁜 게 아니라 그 포인트를 잘 기억해 두려했다.



#4


태평양 내에서 한 번씩 동기 모임을 한다. 각 부서에 흩어져있는 동기 변호사들끼리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신삥들이 숨을 쉬는 그런 시간이다.


그 자리에서 동기 손 변호사가 물어봤다.


“조변, 너 byh랑 잘 지낸다고 소문났던데...”


“잘 지내긴 뭐. 맨날 혼나고 있지.”


그러자 옆에 있던 권 변호사가 말했다.


“byh, 완전 마녀라던데. 성격도 이상하고..”


난 권 변호사를 째려 보았다.


“임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뭔 성격이 이상해? 실력 짱인데!!!”


소리가 커졌다. 다른 동기들이 모두 날 쳐다봤다. 침묵이 흘렀다.


헐... 내가 오버했나...


아. byh는 이런 내 마음을 알려나 모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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