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23) 잉어사건 (1)
#1
“조변호사, 잉어 좋아해?”
황보영 변호사(byh)가 신건으로 의뢰인과 회의하자고 불러서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뜬금없이 잉어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잉어라... 어릴 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몸이 아주 편찮으실 때 외할머니가 잉어를 정성스레 고아 보내주셨다. 한약재와 마늘을 같이 넣어서 푹 고은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한 비린내가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다 안 드시고 그 중에 일부를 꼭 내게 먹이려 하셨다. 난 한 모금 먹어보고 기절할 뻔 했다. 도저히 형용하기 힘든 그 맛.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잉어탕을 드실 때마다 멀리 멀리 도망가 있었다.
그 오랜 시절의 비린내가 확 코에 끼치는 느낌.
“어...맛이 비려서 사실 썩 좋아하지는 않는데요...”
그러자 갑자기 회의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byh는 당황하며 의뢰인에게 말했다.
“아... 우리 조변호사가 시골 출신이라...매우 향토적인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해서 맡게 된 사건이 소위 ‘잉어 사건’이다.
#2
의뢰인은 당시 우리 IP팀에서 아주 중요한 고문기업인 가구회사 K사의 창업주인 박 회장님. 사건 내용은 다소 특이했다.
박 회장님은 자신의 집 연못에 잉어를 기르고 있었는데, 잉어를 관리하는 사람이 잘못해서 잉어 10마리가 죽은 것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하고자 하는 사건.
아이씨... 먹는 잉어가 아니네. 내 스타일만 구겼다. 근데 뭔 이런 사건이 다 있냐? 나는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K사 권 이사가 말했다.
“이 잉어가 말입니다, 한 마리에 최소 2,000만원씩 하는 것들입니다.”
뭐라고? 잉어 한 마리에 2,000만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잉어는 무늬, 특히 검은 점이 어디에 박혀있는가가 아주 중요한데요. 그 위치로 값을 매긴 답니다. 머리 주위에 점이 있는 놈들이 가격이 비싸요. 어릴 때 점 위치가 나이들어서 바뀌거든요. 어떤 놈은 머리에 점이 있었는데 나이들어 등으로 옮겨지고, 어떤 놈은 반대로 등에 있던 점이 머리 쪽으로 옮겨가기도 하구요. 복불복이긴 한데, 하여튼 이번에 문제가 된 잉어들은 거의 대부분 머리 쪽에 이쁜 까만 점들이 있는 최상급 품종들입니다.”
그러자 byh가 말을 거들었다.
“원래 큰 사업하시는 분들은 본인이 키우는 생물이 죽거나 하면 나쁜 징조라고 받아들이고 아주 불쾌해 하시던데. 회장님도 그러신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변호사님. 회장님은 이 사건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관리인을 아주 혼내줘야 한다고... 이거 정말 중요한 사건입니다.”
#3
회의를 마치고 byh는 내게 말했다.
“조변, 이 사건 우리가 해내야 해. 이런 사건처럼 오너가 완전 초집중하고 있는 사건이 제일 중요한 사건이야. 차라리 미수금 받는 사건, 이런 건 져도 큰 타격은 없어. 근데 이런 사건은 지면 우리 짤릴 수도 있어.”
byh는 내게 팍팍 부담을 줬다.
권 이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관리인은 정기적으로 박 회장의 연못에 와서 잉어들을 관리하는데, 6개월 전에 그 중 알을 낳을 조짐이 있는 잉어가 있어서 박 회장 연못에서 2마리 잉어를 자기 양어장으로 데리고 갔단다. 거기서 알을 낳고 다시 그 2마리를 데리고 와서 연못에 풀었는데, 그 녀석들이 오염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2마리가 제일 먼저 폐사하고 곧이어 다른 8마리도 폐사하고 말았다는 것.
와... 이거 입증할 사항이 만만치 않다. 우리가 원고가 되어 손해배상을 구해야 하므로, 우리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건데. 첫째, 8마리 잉어가 2마리 때문에 폐사했음을 입증해야 하고, 둘째, 최초 2마리는 관리인의 양어장에서 오염이 된 상태로 건너왔음을 입증해야 했다. 이 사항을 입증하지 못하면 패소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4
나는 권 이사와 함께 잉어와 관련된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서, 여러 가능성을 테스트해보았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정확히 반반이었다. 그런데 오염 가능성을 지적하는 전문가들 역시 심증만 있을 뿐이지 딱히 물증을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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