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
#1
“조변, 이번에 특허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 보겠는걸?”
byh(황보영 변호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공부’라는 말은 항상 수상하다. byh는 꼭 어려운 사건을 맡길 때 이 단어를 쓰기에.
“무슨... 사건인데요?”
“응. 대규모 국제 특허 분쟁이야. 세계 1, 2위가 완전 단두대 매치를 하는 그런 사건이지.”
사건 내용은 이랬다.
#2
일본의 니콘과 네덜란드의 ASML은 반도체 노광장비lithography equipment) 제조에 있어서는 당시(1999년)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던 업체였다. 그런데 이 두 업체 사이에 특허 분쟁이 발생한 것.
ASML이 니콘을 상대로, 니콘이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제조, 판매금지 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했다.
“아니, 왜 일본 회사와 네덜란드 회사가 우리나라 법원에서 싸움을 해요?”
내가 물었더니 byh가 설명해줬다.
“우리나라 법원에서만 싸움하는 게 아니라 이미 여러 나라에서 붙었어. 미국, 네덜란드, 싱가포르, 일본, 홍콩... 어차피 이 반도체 장비가 전 세계에서 유통되니까 중요 판매국에서 이미 소송이 진행 중이야.”
아... 그럴 수도 있구나.
#3
“우린 누구 편이에요?”
나는 풍차와 튜울립이 예쁜 네덜란드를 떠올렸다. 어릴 때 TV에서 즐겨보던 ‘플란더즈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풍차를 배경으로 뛰어놀던 장면도 생각나고.
“응, 일본이야. 니콘!”
땡. 네덜란드가 아니었어. 일본이라... 난 일본어도 못하는데.
“그럼 이 사건의 쟁점이 뭐죠?”
“크게 보면 두 가지야. 공격하는 쪽에서는(ASML) 상대방(니콘)이 자기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거고, 방어하는 쪽(니콘)에서는 ① ASML의 특허가 무효라는 주장(무효 주장)과, ② 설사 그 특허가 유효라도 자신(니콘)의 제품은 ASML의 특허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비침해 주장)을 하게 되는거지.”
난 좀 이상했다.
“이미 특허가 한국에 등록돼 있는데도 그 특허가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건가요?”
byh는 자세히 설명해줬다.
“특허가 등록되었어도 사후에 그 특허가 잘못 등록된 거라고 무효를 다투는 사건은 엄청 많아. 특허는 원래 신규성과 진보성이 구비되어야 하는데, 누군가 특허를 출원해서 특허심사관들이 심사를 할 때는 이 세상 모든 기술을 다 검증해 보는 것이 아냐. 그럴 수가 없지. 그래서 과거에 비슷한 기술이 있는데도 그와 유사한 기술을 특허로 등록시켜줄 수도 있거든. 이때, 그 특허의 무효를 주장하는 사람이 ‘이 특허가 출원되기 전에 이미 이런 기술이 존재했어요’라는 것을 여러 증거자료를 통해 제출해서 특허의 신규성을 무너뜨리려고 하지.”
아하.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4
“변호사님, 이런 사건은 변호사 비용을 어떻게 받아요?”
byh는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런 사건은 time charge 방식으로 진행돼. 보통 한국 소송은 착수금, 사례금 방식이 많은데, 외국 기업들 소송은 time charge. 즉 우리가 시간을 쓰는만큼 비용을 청구할 수 있거든. 니콘같은 기업은 돈은 신경 안 써. 아마 전 세계적으로 소송 진행하니까 100억 원 이상은 회사 내에 책정되어 있을 거야. 우린 시간을 충분히 쓰면서 일만 잘해주면 돼. 우리 IP팀에 아주 큰 힘이 될 사건이지. 조변이 해 줄 일이 많아.”
나는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럼 황변호사님. 이게 지금 다른 나라에서 소송 중이면, 그 쪽에서도 같은 쟁점으로 싸움을 하는 거겠네요?”
“그렇지. 그거야.”
“다른 나라에서는 언제 소송이 제기되었는데요?”
“미국은 2년 전에, 네덜란드는 1년 전에, 일본은 6개월 전에. 다들 우리나라보다 먼저 제기됐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뭐야 이거? 어차피 우리나라보다 다른 나라가 먼저 소송 결과가 나올 거잖아? 다른 나라에서 이기면 우리도 이기고, 다른 나라에서 지면 우리도 지는 거고. 그렇게 졌다고 해서 우리를 비난할 수는 없는 거고. 이거 완전 거저 먹는 거잖아. 결과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거네. 그 과정에서 타임차지 많이 청구하면 내 실적도 좋아지는 거고. 오.. 개꿀이다~~
그렇게 나의 첫 국제 특허 분쟁은 희망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되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