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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다 – 2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89)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다 – 2편

# 1

“피고인을 징역 4년에 처한다.”

2심 법정이 쩌렁쩌렁 울렸다. 무죄 혹은 집행유예를 기대했는데 실형이 나왔다. 물론 1심의 6년 보다 2년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무거운 형이다. 김 시장은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김 시장 지지자들은 “시장님! 힘내세요!“라며 김 시장을 응원했다.

#2

판결을 듣고 나서 김 시장은 구치소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나는 급히 구치소로 들어가 김 시장을 면담했다. 김 시장의 눈빛은 초점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이렇게 죽어버린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살아남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겁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사람에게 인생이나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모호했다. 자칫 얼마나 허술하고 설익은 조언이 될까 싶은 마음에 나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었다.

#3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나는 다리가 풀린 채 집으로 와서는 몸져 누웠다. 이틀을 정신없이 쓰러져 있었다. 다시 사무실에 복귀했지만 일이 손에 안 잡혔다. 힘든 상황에 처한 의뢰인에게 법률적인 조언 외에 좀 더 근본적인 인생의 조언을 주고 싶었다. 그런 내공을 쌓고 싶었다.

당시 내가 자주 만나는 선배에게 이 고민을 얘기했더니 선배가 내게 권유했다. ‘조변도 이제 법률공부 외에 인문학 공부를 시작할 때가 된 거 같군.’

나는 선배에게 인문학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선배는 일단 영상 몇 개를 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보게 된 것이 김영수 교수님이 EBS에서 강의하신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였다.

#4

사기(史記)라. 사마천이 쓴? 이런 옛날 중국 이야기가 도움이 될까?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갖고 영상을 봤다. 내가 어렴풋이 아는 얘기도 있었지만 대부분 새로운 것들이었다. 영상 전체를 2번 정도 반복해서 보니 사마천 사기의 전체적인 틀이 머리속에 잡혔다. 흥미가 생겼다. 그 다음에는 관련 책을 샀다. 주로 사마천 사기를 쉽게 풀어놓은 책들이었다. 김영수 교수님 책이 가장 알기 쉽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노트 필기하면서 읽어나갔다.

변호사 업무를 하는 일상을 나는 '사바세계‘ 즉 세속적인 세계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다가 고전을 읽을 때면 2,00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위대한 영웅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깊은 숨을 들이키며 힘을 얻고,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왔다. 이러한 경험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고전 속 이야기들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가르침을 주었고, 현대 사회의 복잡함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었다.

#5

깡패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한신(韓信)의 과하지욕(胯下之辱)에서 ‘때를 기다리는 자의 인내’를 배울 수 있었고, 큰 공을 세우고도 스스로 물러나는 장량(張良)의 공수신퇴(功遂身退)에서 ‘진정한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의지의 사나이 오자서(伍子胥)의 일생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배웠고,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당하고서도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모진 시간을 이겨 낸 사마천(司馬遷) 본인의 삶에서 ‘인간정신의 숭고함’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와 관련 사자성어를 소중한 레시피로 정리해 두었다. 의뢰인과 대화를 하면서 인생에 관한 담론을 펴야 할 때는, 내 경험이 아니라 역사적인 스토리를 적절히 풀어내서 의뢰인을 에둘러 위로하는 방법을 썼다. 특히 40대 이상의 남자들에게는 동양고전적인 접근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사마천 사기로 큰 줄기를 세웠고, 세부적으로 동양고전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2008년부터 이렇게 나는 고전의 세계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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