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88)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다 – 1편
# 1
2007년 가을 어느 날. 비서 태신씨가 내게 말했다.
“변호사님, 서울구치소에서 급한 전화 왔는데요?”
난 전화를 당겨 받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터진 것이라 직감했다.
“조우성 변호사님이시죠? 김수영씨(가명)가 방금 자살시도 했습니다. 바로 발견돼서 지금 응급조치 중인데요, 일단 구치소로 빨리 들어와 주세요.”
아... 이런. 내가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구치소로 향했다.
#2
김수영씨는 경기도 A시의 시장이다.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고, 시민들의 신망도 두터운 편이다. 민선 시장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김 시장이 구속되었는데 뇌물 1억 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뇌물을 준 사람은 국회의원과 건설업자였다. 국회의원이 시장에게 뇌물을? 좀 특이한 사건이었다.
1심에서 징역 6년형이 선고되었고, 태평양은 2심부터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다. 나는 선배 변호사와 함께 의뢰인이 2심에서 무죄를 받거나 감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했다.
뇌물사건은 대부분 증거가 부족하고 가장 중요한 증거는 뇌물을 줬다는 공여자의 증언일 경우가 많다. 이 사건 역시 건설업자와 국회의원이 김 시장에게 뇌물을 줬다는 증언이 결정적이었고, 뇌물 자체는 압수되지도 못했다.
#3
내가 주로 서울구치소에 가서 김 시장을 면담했다. 1심에서 법정구속되어 2심 진행 중이었다. 김 시장은 자신이 억울한 부분을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상담을 하다 보니 결정적으로 의뢰인에게 유리한 정황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이 1심에서 법정에 현출되지 못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정치적으로 여러 복잡한 상황이 있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는 상황이라 그 부분은 여전히 2심에서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유리한 정황이 있는데 그 부분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의뢰인이 강하게 원하는 바이므로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핵심은 뇌물공여를 주장하는 국회의원과 건설업자, 이 두 사람에 대한 반대신문을 어떻게 하는가 였다. 반대신문을 통해 사실 건설업자는 자신의 로비가 먹혀들지 않자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는 점, 국회의원의 경우 자신의 재선을 위해서 김 시장을 매장시키기 위해 허위 자백을 했다는 점을 밝혀야 했다. 다들 자기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었다.
#4
물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결정적인 공여자에 대한 반대신문을 통해 진실을 가려야 하는 사건이었기에 반대신문 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각자 반대신문 사항 200개를 만든 다음 질문 순서도 바꾸고 내용을 계속 보완해서 각 150개 항목의 반대신문 사항을 최종 완성했다. 신문사항대로 질문을 해 보는 시뮬레이션도 진행했다. 증인들은 분명 요리조리 회피하는 답변을 할 것이 뻔하기에 어떻게 코너로 몰아갈 것인지를 고민했다.
#5
“변호사님, 저 진짜 억울합니다. 전 뇌물 받고 그렇게 살지 않았어요. 제 자식들에게도 항상 올바르게 살라고 말해왔는데, 1심에서 이런 결과를 받으니 제가 참 자식들 볼 면목이 없습니다. 법정에서 끝내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분통이 터져서 어떻게 합니까? 진짜 제가 죽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내 결백을 믿어줄까요? 정말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 평생이 다 헛된 것을 돌아가 버린 느낌입니다.”
김 시장은 이런 식의 토로를 내게 여러 차례 했다. 나는 일단 재판에 집중하자며 김 시장을 달랬다.
#6
2심 증인신문 기일. 2명의 증인을 모두 불렀다. 아예 특별기일이 잡혔다. 즉 다른 사건은 하지 않고 우리 사건에 대해서만 재판을 하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반대신문 사항을 제출하니 판사도 각오한 듯 했다. 방청석에는 기자와 A시의 김 시장 지지자들이 대거 나와서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배와 나는 번갈아가며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우리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노회한 국회의원과 건설업자 역시 만만치 않았다. 코너로 잘 몰아갔다고 싶은 데도 절묘한 답변을 하며 빠져 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여러가지 고려’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그 특수한 상황이 너무 아쉬웠다. 4시간에 걸친 반대신문이 끝나자 나도 선배도 파김치가 되었다. 어떤 부분은 우리 목적대로 진술을 이끌어 냈는데, 또 다른 부분은 증인들이 교묘하게 피한 형국이었다. 그리고 선고 기일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