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87) Music is My Life – 3편
#1
“하하하, 조 변호사, 사이또 전무가 ok했어요. 1,000만 원에 일본 판례 제공하겠답니다. 엄청 비싼 노래를 불렀어요. 조 변호사.”
다음날 아침 숙취가 아직 깨지 않은 채 출근했는데, 이해완 CEO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 노래 신나게 부르고 헤어졌는데, 집요한 이해완 CEO는 아침 일찍 사이또 전무 숙소로 찾아가서 담판을 지었단다. 분위기 좋을 때 마무리 짓겠다는 심정으로. 아니 판사하다 오신 양반이 추진력 하나는 끝내줬다.
사이또 전무는 돈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 신뢰하는 게 중요하다. 로앤비 경영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법률정보사업을 하려고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라고 말하며 우리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와우!!!!
#2
다음 날 다시 사이또 전무를 만났다. 내게 이런 농담을 했다.
“조 변호사, 우리 회사에 부스를 하나 만들 테니 거기 오셔서 하루 종일 노래 불러주세요. 우리 직원들이 일하다가 조 변호사 노래 듣고 힐링하게. 하하하”
사이또 전무는 내게 선물을 하나 줬다. 3년 일기장이란 건데, 각 페이지마다 3년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예를 들어 1페이지에 “2002년 1월1일, 2003년 1월1일, 2004년 1월1일” 이런 식으로. 신기했다. 자기가 애용하는 일기장이란다. 내 손을 꼭 잡더니 로앤비 사업 반드시 성공하라는 덕담을 해주었다.이 노신사. 진짜 멋지네.
그 날 이후로 사이또 전무를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참 따뜻한 분으로 기억된다.
#3
2005년경 의뢰인이 영국 회사로부터 의류 라이센스를 받아오는 협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협상을 서포트하고 있었는데, 협상이 생각보다 난항이었다. 영국사람 특유의 자존심인가 싶었다. 영국의 아시아담당 임원이 한국에 나왔을 때 나는 의뢰인과 같이 가서 회의를 하고 밥도 같이 먹었다. 의뢰인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그 임원을 데리고 가라오케로 갔다. ‘골치 아픈 협상 이야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한잔 하시죠~~’라며 의뢰인은 마구 친한 척을 했다.
하지만 영국 상무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자연스레 음악 이야기로 주제가 흘렀다. 상무는 갑자기 비틀즈 이야기를 했다. 비틀즈는 자기에게 종교와 같다고 했다. 뭔 종교씩이나... 그때 난 좀 취했었다.
그럼 내가 비틀즈 노래 하나 부르지뭐. 마침 무대에 피아노가 있었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피아노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겁도 없이 비틀즈의 ‘렛 잇 비’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맨 정신으로는 못했으리라. 그런데 술도 한잔 했겠다, 영국 상무가 하도 뻣뻣하게 나와 빈정이 상한 상태였는데, 비틀즈가 종교 어쩌고 하니까 그래 하나 불러줄게 라는 심정으로 했던 것 같다.
#4
렛잇비는 반주가 쉬운 편이다. 원래는 다장조 곡인데, 높은 라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2음 정도 내리면 딱 내가 부르기 쉬운 음역이다. 가장조(A)로 조옮김을 해서 노래를 불렀다. 다행히 삑사리 없이 잘 마무리했다. 정말 누구 말대로 노래는 만국공통어인가... 영국 상무는 아주 반색을 하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또 할 줄 아는게 있냐고 해서 가장 무난한 ‘yesterday’로 또 한 곡 말아드렸다. 나는 의뢰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사장님, 이젠 사장님이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역시 이 협상도 그 후에 스무스하게 풀어졌다.
#5
나는 살아오면서 이근우 선생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다. 촌놈에게 음악의 세례를 주셔서 내 인생은 훨씬 풍성해진 느낌이다. 나는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세바시 구범준 PD와 의논해서 세바시 무대에서 이근우 선생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선생님을 무대에 초청하는 계획을 세웠다.
2013년 12월 경, 나는 베토벤 9번 교향곡과 선생님의 인생을 씨줄 날줄로 엮어서 강연을 하고, 강연 후반부에 선생님을 무대 위로 모셨다. 선생님이 정말 기뻐하셨다. 나는 세바시 강연 장면을 전자액자에 담아서 선생님께 선물했다. 선생님은 그 액자를 즐거 보시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랑도 많이 하셨단다.
그 선생님이 2023년 11월 12일 향년 89세로 작고하셨다.
진정한 스승님이었던 이근우 선생님. 하늘 나라에서도 거기 있는 사람들 모아서 합주부를 운영하실 듯 하다.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