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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Music is My Life – 2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86) Music is My Life – 2편

#1

1998년경, 나는 처음으로 IP팀에서 국제특허분쟁 사건을 맡게 되었다. 일본기업 니콘과 네덜란드기업 ASML간의 특허 분쟁이었는데, 태평양은 니콘을 대리했다.

사건 준비를 위해 일본측과 이메일을 자주 주고 받아야 했는데, 물론 전문 번역사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일본어를 너무 모르니 갑갑했다. 이번 참에 일본어를 좀 배우자 싶어서, 학원에 등록해서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했다. 그때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어에 빨리 익숙해지는 방법으로는 일본 노래를 자꾸 따라부르는 게 좋다고 했다. 노래라? 그래. 그럼 빨리 배우겠네. 나는 일본 노래책을 구해서 키보드를 치며 흥얼거렸다. 그때 쟁쟁한 일본 가수들의 노래를 많이 접하게 됐다. 특히 X-japan의 노래들 중에서 멋진 곡들이 많았다.

#2

2001년 2월 로앤비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 국내 최고 법령, 판례 정보 사이트였다. 다만 애초 기획단계부터 이해완 CEO는 로앤비에 일본 판례를 제공하고 싶어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둘 다 대륙법계인데, 민법이나 상법 분야는 일본 판례가 훨씬 다양하고 풍부했다. 그래서 일 좀 하는 변호사들은 어려운 사건의 경우 일본 판례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어필하곤 했다.

서치해보니 일본에는 ‘신일본법규사’라는 곳이 인터넷으로 판례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일본의 로앤비인 셈. 이해완 CEO는 신일본법규사 측에 이메일을 보내 제휴를 타진했다. 일본 측에서는 반응이 느렸다. ‘제휴가 잘 되겠나’ 의심이 들 즈음에, 신일본법규사 임원 2명이 한국에 출장을 온다고 했다. 그때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이해완 CEO는 이 기회를 잘 살려보자며 의지를 다졌다.

#3

당시는 로앤비가 이제 막 사이트를 오픈한 시점이라 매출은 없고 여기저기 돈 들어갈 데가 많았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1,000만 원만 우선 내서 일본 판례를 받기 시작하고, 나중에 수익이 생기면 정산하는 쪽으로 협상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일본 신일본법규사를 좀 더 찾아보니 대단한 회사였다. 출판사인데 자회사 중에 항공사(!!)가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더니... 매출이나 이익 규모가 태평양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휴... 이런 업체에다가 ‘1000만 원’을 이야기하면 놀라 자빠질 것 같았다.

#4

한국에 온 신일본법규사 임원은 사이또 전무(50대 후반)와 상무였다. 사이또 전무는 백발이 근사한 신사였다. 일단 고기집에서 식사를 했다. 당연히 우리가 밥을 샀다. 로앤비 경영진 전부 일본어 스피킹은 서툴렀기에 전문 통역사를 대동했다.

사이또 전무는 아주 신중했다. 우리가 일본 판례를 한국에서도 제공하고 싶다고 하니 원칙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서로간의 니즈가 맞아야 한다면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이대로 헤어질 수가 없었다. 이해완 CEO는 급히 근처 술집에 2차를 예약했다. 아... 오늘은 지출이 좀 심하겠구나... 싶었다.

#5

아담한 술집이었고 가라오케 기계가 있었다. 우리는 분위기를 좀 띄우기 위해 사이또 전무에게 계속 술을 권했다. 그때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가라오케 반주에 맞춰 노래를 했다. 사이또 전무는 그 모습을 아주 유심히 쳐다봤다. 노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때 이해완 CEO가 내게 다급하게 말했다. “조 변호사, 혹시 일본 노래 아는 거 있어요? 빨리 한 곡 불러봐요.” 내 등을 떠밀었다.

연습한 건 몇 개 있는데... 일본 사람 앞에서 일본 노래를 부르는 건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CEO가 시키니. 나는 무대로 나갔다.

일단 빠르게 내 머릿속 일본 노래 DB를 돌렸다. 저 정도 나이의 일본 남자가 좋아할 곡이 뭐가 있을까. 일단 나까부치 츠요시의 ‘간빠이’, ‘RUN‘, 그리고 옛날 노래인 ’사치코‘와 ’블루라이도 요꼬하마‘ 정도가 떠올랐다. 일단 나는 ’간빠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꽤나 웅장하고 서정적인 곡인데, 특히 일본에서는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린다고 했다. 가사는 외우고 있었기에 눈을 지그시 감고 혼신을 다해 불렀다. 정말 혼신을 다해...

#6

노래를 마치자 어라? 사이또 전무가 내 옆에 서 있었다. 아이, 깜짝이야.

“스고이~~”를 외치며 나를 끌어 안았다. 내가 사이또 전무에게 마이크를 건내려 하자 자기는 노래를 못한다면서 노래 잘하는 사람이 정말 부럽단다. 그리고 간빠이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고 했다. 날 더러 또 간빠이를 불러달랬다. 저기서 이해완 CEO가 신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간빠이를 불렀다. 사이또 전무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좀... 무서웠다. 하지만 로앤비 사업을 위해서 내 영혼을 담아 불렀다.


간빠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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