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85) Music is My Life – 1편
#1
2001년 3월 경. 강남의 어느 술집.
로앤비 이해완 CEO는 나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조 변호사, 일본노래 아는 거 없어요?”
나는 “몇 개 알긴 합니다.”라 답했더니 이 CEO가 내 등을 떠밀었다. “얼른 나가서 한 곡 불러요. 뭔가 계기가 필요합니다.” 나는 엉거주춤 무대로 나갔다.
#2
누구나 학창시절 다양한 추억이 있을 텐데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중학교 때 했던 음악 활동(합주부 활동)이다. 모교인 밀양 중학교는 내가 입학하기((1981년) 전부터 유명한 음악 선생님이 계셨다.
이근우 선생님.
학생들은 ‘악질’이라 불렀다. 음악 교과목을 가르치시면서 별도로 합주부를 운영하는데, 매년 입학생들 중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아이들을 선별해서 합주부로 차출시킨다. 합주부가 되면 점심시간, 방과 후, 주말에도 나가서 연습을 해야 한다. 이근우 선생님은 아주 엄격해서 매끈하게 생긴 나무봉으로 속칭 빳따(!)를 엄청 때리신다. 또 선후배간의 규율도 무척 센 편이라 합주부에 잡혀간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3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어김없이 합주부에 차출되었고 바이올린을 배정받았다. 시골 촌놈들이 악기를 만져봤겠는가. 음악선생님은 악기 전부를 자비로 구입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셨다.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클라리넷, 프플루트, 트럼펫, 트럼본...
.
1년 동안 연습을 해서 경상남도에서 시행하는 음악경연대회에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고, 연말에 멋진 연주회를 하곤 했다. 또 밀양 내 각종 행사(아랑제, 현충일, 광복절 등)가 있을 때 행사 연주도 도맡아했다.
난 2학년, 3학년 모두 합주부 학년 부장(部長)이었다. 부장은 할 일이 많다. 연습하기 전에 부원들 악기 튜닝을 미리 해 놓아야 한다. 특히 바이올린, 첼로 등은 음이 자주 변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튜닝하기 전 미리 초벌 튜닝을 부장이 해야 한다. 피아노로 음을 치고 현악기 줄의 텐션을 조절해서 튜닝을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악보를 8마디씩 편곡해서 칠판에 써놓으시면 부장은 각 멤버별로 미리 테스트를 시키고 나중에 합주할 때 잘 연주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놓아야 한다.
#4
내 중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공부하는 것보다 합주부 활동하는 게 훨씬 힘들었다. 다만 덕분에 음감(音感)이 좋아졌고, 여러 악기들을 간접적으로 다뤄보게 되었다. 그리고 튜닝이나 초벌 연주를 해야 했기에 악기의 왕(!)인 피아노를 나름대로 뚱땅거리면서 개별 악기들의 준비 상태를 점검했다. 부장 겸 악장(바이올린 제1주자)이었기에 작은 행사에서는 내가 지휘도 했다. 연습할 때는 그리 싫었지만 연말에 극장에서 연주회를 할 때 관객들(특히 여중생들)의 환호를 받을 때면, ‘아하. 이 맛에 고생해서 연습하는구나’라는 심정을 느끼기도 했다.
#5
중학교 때 그렇게 질리도록 음악생활을 했는데, 막상 고등학교를 가고 나니 나도 모르게 쉴 때면 음악과 관련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음악 전공인 이모가 쓰던 고물 피아노를 물려 받아서 시도 때도 없이 피아노를 쳤다. 정식으로 배운 바는 없다. 유행가 책을 구입해서 거기에 쓰여 있는 코드를 짚어가며 연주 연습을 했다. 처음엔 코드가 뭔지도 몰랐는데, 자꾸 연습하면서 감으로 알게 되었다. C 코드는 도미솔, D 코드는 레파#라, E 코드는 미솔#시...
반주를 하며 유행가를 불렀다. 그런데 만약 여자 노래를 부르려면 코드가 맞지 않았다. 그땐 변성기가 되기 전이라 여자 노래는 코드 2개만 내리면 되었다. 그래서 만약 F 코드면 D 코드로, G 코드면 E 코드로 머리 속에서 암산하면서 조옮김을 해서 반주를 해곤 했다.
#6
내 음악 실력은 대학 들어와서 효험을 봤다. 당시만 해도 친구들끼리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시절이다. 그때 내 머리 속에는 200여곡 정도의 유행가 코드가 저장되어 있었다. 제목만 말하면 즉석에서 반주가 가능했다. 역시 높은 음역의 노래는 바로 2- 3코드를 내려서 반주했다. 밀양 촌놈이 음악적인 재능을 보이자 다른 친구들이 신기해했었다.
고시공부할 때 돈을 모아서 아주 작은 키보드(야마하)를 샀다. 밤에 공부하다 잠이 오면 키보드에 헤드폰을 끼고 유행가를 연주했다.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공연하는 가수로 빙의해서 혼자 심취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