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형사사건 변호는 가히 종합예술이라 - 3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84) 형사사건 변호는 가히 종합예술이라 - 3편

#1

고소인과의 대면도 중요했다. 아무리 수사관이 우리에게 호의적이라 하더라도 고소인이 끝까지 피의자의 처벌을 원한다면 수사관으로서도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최희중을 데리고 남양주 경찰서로 가는 차안. 최희중은 2년 만에 고소인 방 사장을 만난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다. 방사장이 지독하게 구는 바람에 이혼하고 자신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방 사장에 대한 원망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최희중에게 설명했다.

“지금 자네는 방 사장과 대립각을 세워서는 안 되네. 방 사장이 계속 자네에게 억하심정을 갖도록 하면 결코 자네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어. 이제 새로운 비즈니스로 재기해야 하는 자네로서는 예전의 악연(惡緣)들과는 부드러운 이별을 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고소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해.”

#2

경찰서로 들어가자 윤 경위 앞에 고소인인 듯한 60대 신사가 앉아 있었다. 아주 완고하면서도 고집이 세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윤 경위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방 사장에게 90도로 인사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희중씨 변호인인 조우성 변호사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는데 방 사장님 되시죠? 그 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으셨습니까? 뭐하나? 최 사장. 얼른 인사드리지 않고.”

최희중은 어정쩡한 자세로 방 사장에게 목례를 했다.

“그래, 그리도 피해다니더만 지금 그 꼴이 뭔교? 참, 옛날에 그 잘나가던 최 사장이 어쩌다 저리 됐을꼬? 쯧쯧.”

방 사장은 오랜만에 보는 최희중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 했다.

#3

나는 방 사장에게 “저 친구 사업 망가지고 이혼하고 혼자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살다보니 저 지경이 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뭐라꼬요? 이혼했다고요?”

“네, 하도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결국 그리 된 것 같습니다. 여자들은 아무래도 그런 상황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잖습니까.”

순간 방 사장은 예전의 자기 행위(최희중의 부인 월급에 가압류 했던 일)을 떠올렸는지 겸연쩍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그 동안 마음고생 심하셨겠지만, 최사장 저 친구도 지금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제가 저 친구 사정을 잘 아는데, 털어봐야 나올 재산이 없습니다. 부디 선처를 베풀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방 사장은 볼멘 소리로 “나도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연락이라도 됐으면 내가 이러지는 않았을텐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딱 끊고.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라면서 항변했다.

#4

나는 “저 친구 이혼 당하고 나서 자살시도도 여러번 했습니다. 사장님께는 죄송해서 연락을 못했다고 하더군요. 하여튼 죄송합니다. 사장님.”라면서 다시 목례를 했다.

그 후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1시간 반 정도 대질신문이 진행되었다. 대질신문이 끝나고 방사장은 자리를 떠나고 윤 경위가 나를 불렀다.

“잘 해결될 거 같습니다. 아마 고소인이 고소취하 할 것 같습니다.”

“네? 고소취하를요? 만만치 않아 보이던데.”

“제가 설명을 했죠.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사기죄로 성립되기 어렵다. 그리고 피의자가 투자를 받기 위해 설명했던 내용 중에 다소 낙관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투자자를 사기쳤다고 볼 수는 없다. 어차피 고소취하 안 해도 나는 이 사건을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올릴 것이다. 그러니 서로 편하게 가자. 의외로 고소인도 제 설명을 듣더니 순순히 따르던 걸요. 피의자의 행색을 보아 하니 별로 돈이 나올 구멍이 없다고 느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

휴...

다리가 풀렸다.

#5

다음 주, 의정부 지방검찰청은 최희중에 대한 사기죄에 대해 불기소(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최희중을 짓누르던 형사 처벌의 위험이 사라진 것이다.

3주간의 변호기간이었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던 사건이었다.

아직도 윤 경위와는 잘 지내고 있다. 윤 경위의 지인들에게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윤 경위는 가장 먼저 내게 전화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물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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