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너머로(Beyond the Colors)] (2) 사진의 등장과 미술의 대변혁 - 재현에서 표현으로
#1
19세기 중반, 사진의 발명은 미술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사진은 대상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로 등장했다. 화가 폴 델라로슈는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사진의 위력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이 시각적 재현의 영역을 장악해 나가자, 예술가들은 회화의 존재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2
이런 위기 속에서 예술가들은 창의적인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들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색채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면서 주관적인 시각 경험을 강조했다. 특히 클로드 모네는 인상주의 운동을 선도한 대표적 화가로, 그의 작품에서는 빛과 색채에 대한 독창적 접근이 돋보인다. 모네는 같은 대상을 다양한 시간과 날씨 조건에서 반복해서 그렸는데, 이를 통해 빛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과 그에 따른 인간의 지각 경험을 탐구했던 것이다.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효과를 통해 인간의 주관적 시각을 극적으로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모네의 예술은 대상의 객관적 재현보다는 화가의 주관적 인식을 중시하는 새로운 예술관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3
표현주의 화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면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출하려 했다. 20세기 초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 운동은 주관적 감정과 관념을 왜곡되고 과장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고독을 섬뜩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걸작이다. 표현주의 예술은 사진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깊은 심연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4
이처럼 사진은 회화를 모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모색하게 만들었다. 독일의 선구적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사진의 등장이 예술의 존재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고 주장했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진과 영화 같은 기술 복제 매체의 발명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파괴하고 대중화를 촉진했다. 여기서 '아우라'란 전통적인 예술작품이 지녔던 일회적이고 현장적인 특성, 즉 "지금 여기에만 존재한다는 독특한 현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는 예술을 기계적으로 복제 가능한 상품의 지위로 끌어내림으로써 제의적 가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 제의적 가치(Kultwert)?
벤야민은 그의 저명한 에세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에서 이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전통적인 예술작품의 "Kultwert"(제의적 가치)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지닌 "Ausstellungswert"(전시적 가치)를 대비시키면서, 사진과 영화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예술의 성격과 기능에 가져온 변화를 분석했다.
그러니까 "Kultwert"는 벤야민 미학 이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예술과 기술, 그리고 대중문화의 관계에 대한 그의 통찰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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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벤야민은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복제기술이 대중의 미적 감수성을 향상시키고 예술을 민주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벤야민에게 중요한 건 예술의 물신적 가치가 아니라, 그것이 현실을 변혁하고 대중을 각성시키는 비판적 도구로 기능하는 일이었다.
#6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등 20세기 전위 예술 사조들은 사진 이후 회화의 자유로운 변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술계의 변화는 단순히 양식적 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사진은 대중들이 시각 이미지를 소비하고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뒤바꿔 놓았다. 이제 예술작품은 희소가치를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복제와 배포가 가능한 이미지 상품이 되어 버렸다. 대중문화가 발달하면서 예술의 정의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보화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넘쳐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예술만의 고유한 영역을 지켜내는 일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로 남아 있다.
#7
사진 이후 예술의 변화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진을 대중이 문화자본을 획득하고 계급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분석했고, 매체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사진의 발명은 인간의 감각 균형을 시각 중심으로 재편한 혁명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들은 사진을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근대 사회의 문화와 인식 체계를 송두리째 바꾼 핵심 매개체로 이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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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진의 등장은 미술의 근본적 재편을 촉발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은 회화를 객관적 재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예술가들이 주관적 표현과 실험적 탐구에 몰두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했다. 특히 모네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순간적 시각 경험의 다채로운 인상을 포착하는 데 온 힘을 쏟았고, 이는 예술의 주관성과 자율성을 일깨우는 혁신적인 움직임이었다.
반면 벤야민이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사진은 예술의 일회적 특성을 무너뜨리면서 복제 문화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문화적 산물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직면한 이 새로운 도전, 즉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표현과 기술 사회의 복제 논리 사이에서 예술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 나가는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