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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테스트

by 조우성 변호사

맹목(盲目)의 미각(味覺)


요즘 음식 예능에서 블라인드 테스트하는 장면이 인기다. 눈을 가리고 맛을 보는 행위, 이를 두고 맹목(盲目)의 미각(味覺)이라 일컫고 싶다.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노력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대 중국의 『예기(禮記)』에는 '식불언미(食不言味)'라 하여 '먹을 때는 맛을 말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이는 단순히 식사 예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본질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떠드는 것이 아닌, 오롯이 미각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블라인드 테스트와 그 정신이 맞닿아 있다 하겠다.


서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통이 있었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침묵 식사'라는 관행이 있었다. 식사 시간에 말을 삼가고 오직 음식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엄숙함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음식의 맛과 질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창조주의 은혜를 온전히 느끼기 위함이었다.


우리 선조들도 이와 같은 지혜가 있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요, 말은 새겨야 맛이라'는 속담이 그렇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지 말고 깊이 음미하라는 뜻이다. 블라인드 테스트야말로 이 '새김'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동양의 전통 의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오미(五味)'를 중요시한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이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미각의 분류가 아니라 음식의 기(氣)와 약성(藥性)을 나타내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색깔이나 모양이 아닌, 맛으로 음식의 본질을 파악하려 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 블라인드 테스트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76년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제친 이 사건은 와인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는 단순한 미각의 승리가 아니었다. 오랜 권위와 편견에 대한 도전이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동양 철학의 정수가 서양의 와인 시음에서 빛을 발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맹인 안마사 제도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시각이 없기에 오히려 예민해진 촉각으로 근육의 결을 읽고, 경락의 흐름을 짚어낸다. 이 역시 '가리면 보인다'는 역설의 한 예라 하겠다.


요즘 음식 예능의 블라인드 테스트가 인기를 끄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진실을 가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 오히려 눈을 가림으로써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맹목(盲目)의 지혜, 그것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또 다른 눈이 아닐까. 귀로 보고 손으로 보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21세기 예능의 옷을 입고 되살아난 듯하여 새삼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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