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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Nov 02. 2024

진실의 무게를 견디는 자: 카산드라의 예언

[올림포스의 법정 : 신화 속 현대법 읽기](5) "진실의 무게를 견디는 자: 카산드라의 예언과 현대사회의 양심"     

트로이 성벽 위, 새벽빛을 가르며 한 여인의 절규가 울려 퍼진다. "불타는 도시가 보인다! 목마 안에 숨은 그리스 병사들이..." 신탁의 능력을 지녔지만 영원히 믿음받지 못할 운명의 카산드라. 노자가 말한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는 역설처럼, 그녀의 이야기는 진실을 아는 자의 숙명적 고독을 보여준다. 알지만 전하지 못하는 진실, 말하지만 들리지 않는 외침, 보이지만 감춰야 하는 미래. 아폴론의 저주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을 담고 있다.     


#1. 예언자의 숙명: 고독한 진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2019년 제약업계 리베이트 수사에서 드러났듯, 현실에서 '진정한 앎'을 드러내는 일은 위험하다. 여러 제약사 리베이트 사례는 내부고발자들의 고독한 싸움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장자의 나비 꿈처럼, 진실과 허상의 경계에서 인간은 늘 고뇌한다.     


#2. 시간의 벽을 마주하는 진실

니체가 "때 이른 진실은 순교를 부른다"고 했다면, 맹자는 "천시(天時)를 기다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진실을 말하는 자를 보호하려 하지만, 시간이라는 장벽을 넘기는 어렵다. 한비자가 경계했던 "아첨하는 신하"들처럼, 불편한 진실은 종종 '과민반응'이나 '비관론'이라는 이름으로 묻힌다.     


#3. 충성과 배신 사이의 경계

내부고발자들이 겪는 '배신자'라는 낙인은, 충(忠)과 의(義)의 경계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강조한 "공직자의 양심"처럼, 개인의 양심과 조직의 이익이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4.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신탁

현대의 알고리즘과 데이터는 새로운 형태의 예언이다. 하이데거가 기술의 지배를 경계했다면, 묵자는 "이로움의 저울"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위험을 경고했다. 데이터라는 새로운 언어는 진실을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더 교묘하게 은폐할 수도 있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세상의 무게를 홀로 견디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가 진실의 힘을 이야기했다면, 퇴계 이황은 "의리를 지키는 것이 곧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 했다. 카산드라의 이야기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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