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탑재] 발우공양(鉢盂供養), 한 그릇에 담긴 수행의 진수
한 그릇의 밥을 먹는 일에도 우주의 이치가 담겨있다. 산스크리트어 'Pātra'에서 유래한 발우(鉢盂)를 통해 이루어지는 발우공양은 수행자의 일상적 식사이자 깊은 수행의 시간이다. 부처님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이 전통은 음식을 대하는 지혜를 전한다.
"계수공양(計數供養)"이라 하여 쌀알 하나까지 세어가며 먹는다는 말처럼, 발우공양은 음식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실천이다. 선원에서는 한 그릇의 밥알도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을 중요한 수행으로 여긴다.
발우는 승가의 삼의일발(三衣一鉢) 중 하나로, 수행자의 필수품이다. 초기 승가에서는 탁발한 음식을 발우에 담아 나누어 먹었으며, 이러한 전통이 점차 체계화되어 오늘날의 발우공양으로 이어졌다. 시대에 따라 발우의 재질과 형태는 변화해왔으며, 철과 사기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되었다.
한국불교의 발우공양은 철저한 규율과 절차를 따른다. 선원청규에 따르면, 발우는 네 개의 그릇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발(大鉢)에는 밥, 중발(中鉢)에는 국, 소발(小鉢)에는 반찬, 말발(末鉢)에는 세척용 물을 담는다. 이를 바르게 다루는 법을 발우법(鉢法)이라 한다. 각 발우는 크기와 용도가 정확히 정해져 있으며, 발우보는 정해진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
공양의 시작은 발우를 펴는 것으로 시작된다. 발우보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조용히 풀어지며, 공양을 시작하기 직전에 오관게(五觀偈)를 독송한다. 오관게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를 헤아린다(計功多少量彼來處)
둘째, 나의 덕행이 이 공양을 받을만한지 살핀다(忖己德行全缺應供)
셋째, 마음의 허물을 경계한다(防心離過特貪等爲宗)
넷째, 이 음식이 병을 고치는 약임을 안다(正事良藥爲療形枯)
다섯째, 도를 이루기 위해 이 음식을 받는다(爲成道業應受此食)
중국의 선종에서는 백장회해 선사가 『백장청규』를 통해 발우공양의 구체적 작법을 정립했다. 특히 '식존오관(食存五觀)'을 강조하여, 매 끼니를 수행의 시간으로 승화시켰다. 이러한 전통은 한국과 일본의 불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발우공양의 실천 요소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정숙(靜肅)으로, 공양 중에는 절대적 침묵을 지킨다. 둘째는 정량(定量)으로, 적당량만 덜어 남기지 않는다. 셋째는 청정(淸淨)으로, 발우를 깨끗이 사용하고 관리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은 각각 몸과 말과 마음의 수행에 대응한다.
현대 한국의 선원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조계종 주요 선원의 경우, 하안거와 동안거 기간에는 발우공양이 수행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발우공양은 하루 두 차례, 아침과 점심에만 이루어지며, 저녁에는 공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템플스테이를 통한 발우공양의 대중화다. 많은 사찰에서 발우공양 체험을 통해 한국불교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으며, 이는 불교의 식사예절과 수행정신을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발우공양에는 음식과 도구에 대한 깊은 존중이 담겨있다. 발우를 바닥에 직접 놓지 않으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룬다. 젓가락과 숟가락도 정해진 위치에 놓아야 하며, 공양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깨끗이 닦아 보관한다.
음식과 소비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발우공양은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한 그릇의 밥에 담긴 우주의 은혜를 이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는 발우공양의 지혜는,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식사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粒粒皆辛苦" (립립개신고: 쌀알 하나하나에 모두 수고로움이 깃들어 있다)
- 『백장청규』의 공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