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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Dec 02. 2024

리베이트 관행과 싸운 6개월간의 기록

제가 운영하는 로펌 머스트노우가 처리했던 사건들을 모티브 삼아, 드라마 형태로 작성해 보는 글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 조우성 변호사 올림 - 


[7편] 리베이트 관행과 싸운 6개월간의 기록


#1 양심의 갈림길: 42%의 실적이 말하는 것


머스트노우의 옐로우 포커스룸에서 허용일 변호사가 늘 그렇듯 검은색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의 유튜브 채널 '허변의 실무썰'은 오늘도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사연을 준비했습니다. 제약업계의 한 영업사원이 보내온 사연인데요..."



M제약 영업관리팀의 조용한 사무실. 최동호의 책상 위 모니터에는 붉은색 숫자가 끊임없이 깜박였다. 실적 관리 프로그램의 경고등이었다. 3년차 영업사원의 처방실적은 목표의 42%에 불과했다.


의료기기법 개정안과 약사법 시행규칙의 강화로 리베이트 처벌 기준이 명확해지면서 영업환경이 급변했다. 하지만 실적 압박은 여전했고, 분기 평가를 앞둔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동호 씨, 잠깐 볼까?"


김성훈 팀장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회의실 형광등 아래서 팀장의 얼굴은 쇳소리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답게, 그의 목소리에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는 특유의 설득력이 묻어났다.


"요즘 제약업계가 많이 바뀌었다지만...이건 불법이 아니라 관행이야. 학회 지원이나 임상 자문료는 법적 그레이존이라고. 다들 이렇게 하고 있어."


"하지만 팀장님..."

"그래,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지. 하지만 이게 업계의 현실이야. 대형병원 의사들의 학회 참가비나 자문

료 지원... 다 아는 얘기 아닌가?"


오후 6시. 실적관리 프로그램의 경고등만이 어두워진 사무실을 밝혔다. 퇴근길에 확인한 대출금 독촉장 앞에서 동호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대출금 255만원. 이 숫자는 매달 그를 짓눌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은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전했다.


스마트폰 속 아내가 보낸 초음파 사진. 6개월 차 태아의 작은 심장이 뛰는 모습과 함께 병원책상 서랍 속 낡은 제약바이오 윤리헌장.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마지막 글자는 희미해져 있었다. 그 선서가, 팀장의 '현실적인' 조언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2 데이터로 그린 새로운 지도


퇴근 후 들른 병원 근처 카페. 우연히 마주친 20년차 선배 박상훈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메리카노 잔을 만지작거리며,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커피 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박상훈 차장이 입을 열었다. “작년 겨울이었어.'" 박상훈 차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말 못 할 약속들로 처방을 늘리다가... 결국 약물 상호작용을 제대로 체크 못했지. 환자는 내가 아닌 리베이트가 죽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찬 커피를 한 번에 들이킨 선배의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었다. ”동호야, 넌 아직 달라질 수 있어. 내 전철을 밟지 마.:

"어떤...?"

"B형 간염 환자였는데, 약물 상호작용을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거지. 처방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했던 거야."

박상훈의 손이 커피잔을 꽉 움켜쥐었다.


그날 밤부터 동호는 회사의 데이터 분석팀과 협력하여 HIRA 청구 데이터와 KIDS 부작용 보고를 교차 분석하며 밤을 새웠다. 엑셀시트는 점차 의미 있는 패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의약품 부작용 신고센터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지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처방 통계를 분석했다. 처방 패턴, 부작용 사례, 비용 효율성을 엑셀시트에 정리하며 밤을 지새웠다.


엑셀시트를 응시하며 동호는 3년 전 신입교육을 떠올렸다. '제약영업은 단순한 판매가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을 다루는 산업의 일원입니다.' 당시엔 그저 형식적인 인사말로 들렸던 강사의 말이, 이제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모니터 속 경고등을 응시했다. 빨간색 실적 숫자 너머에는 분명 누군가의 생명이 있었다.


데이터 분석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동호의 책상은 달라져 있었다. 리베이트성 접대 영수증 대신 의학 저널이, 실적 보고서 옆에는 HIRA 데이터베이스 자료가 쌓여갔다. 그의 엑셀시트는 이제 매출액이 아닌, 환자의 회복률을 추적했다. 팀장의 눈총이 따가웠다. 하지만 엑셀시트 위를 달리는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 길을 가야 했다


약물 안전성 정보와 부작용 피해구제 제도를 참고하며,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처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갔다. 첫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서 한 의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이터는 좋은데, 너무 번거롭잖아요. 기존 방식대로 하면 안 될까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어노킹을 했다. 세 번째 병원에서 만난 정태영 교수의 반응은 달랐다.

"이런 데이터 기반 처방이야말로 진정한 의료 윤리 아닐까요? 레지던트 시절부터 EBM(Evidence-Based Medicine)을 강조해왔는데, 이런 자료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3 흔들리는 실적, 꺾이지 않는 신념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민석 교수의 연구실. 창가에 놓인 모니터에는 동호가 준비한 처방 분석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놀랍군요. 이런 처방 가이드라인이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던 거예요."


김 교수의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특히 약물 상호작용 데이터베이스는... 함께 작업해보시죠. 우리 병원부터 시범 적용해보는 건 어떨까요?"

회사로 돌아온 동호를 기다린 것은 김성훈 팀장의 차가운 눈빛이었다. 회의실 문이 닫히자 팀장은 실적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자네 때문에 우리 팀 전체 실적이 흔들리고 있어. 이상주의는 이제 그만하지. 다른 영업사원들 눈치도 좀 봐야지."

사무실을 둘러보니 동료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저 사람 때문에 우리 팀 보너스도 날아가겠어.’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성과 저해 요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M제약의 매출 부진을 다루며 '과도한 윤리경영'을 지적했다.


"윤리경영도 좋지만, 주주가치는 어떻게 할 건가?"

"너무 급진적인 변화는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


보건복지부의 '리베이트 투아웃제'와 의료법 제23조의5 위반에 따른 처벌 강화는 업계에 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한번만 적발되어도 최대 1년간 요양급여 정지, 두 번 적발되면 해당 약제 퇴출이라는 강력한 처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동호의 항변에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자네 마음은 이해해. 하지만 여긴 현실이야. 다들 '관행'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어."


#4 숫자가 증명한 정의


때로는 정의가 숫자로 증명된다. 차가운 데이터가 따뜻한 진실을 말하는 순간이었다.

서울대병원 대강당.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띄워진 그래프는 6개월간의 기록이었다. 환자 회복률 23% 향상, 의료비 15% 절감. 차가운 숫자들이 그의 선택을 증명하고 있었다. 스크린 위로 6개월간의 피땀이 숫자와 그래프로 떠올랐다. 김민석 교수와 함께 만든 처방 가이드라인, 그것은 동호의 모든 것이었다.


"보시는 것처럼, 약물 상호작용을 고려한 처방은 환자의 회복률을 23% 향상시켰습니다."

김 교수의 발표에 청중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더불어 의료비 절감 효과도 상당했습니다. 환자 1인당 연간 의료비가 평균 15% 감소했죠."

동호가 보조 발표자로 나서서 비용효과성 분석 결과를 설명했다.


젊은 의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이런 데이터베이스가 있었다면, 그동안의 처방을 더 신중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실제로 이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발표회가 끝난 후, 보건복지부 사무관이 동호를 찾아왔다.

"정부에서도 이런 모델에 관심이 많습니다. 혹시 다른 병원들과 공유할 의향은 없으신가요?"

그즈음 M제약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준비하던 경영진의 눈에 동호의 프로젝트가 들어온 것이다.


변화는 6개월 후에 찾아왔다. 실적표의 빨간색 경고등이 하나둘 파란빛으로 바뀌어갔다. 청탁도, 리베이트도 없이 이룬 승리였다.

"강 대리 덕분에 우리 과 처방 오류가 확실히 줄었어요.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고요."

한 대학병원 과장의 증언이었다.


대형 병원들이 앞 다투어 새로운 처방 가이드라인 도입을 검토했고, 제약업계 전반에 '윤리경영'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학회 발표에서 한 교수는 "이것이 우리가 찾던 지속가능한 모델"이라고 평했다.


#5 윤리가 이끄는 혁신, 데이터가 보여주는 미래


그로부터 1년. M제약 본사 대강당에 선 동호의 명찰에는 '윤리경영팀 과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이 빛났다. 그의 앞에는 미래의 동호들이 앉아 있었다. 스크린에는 지난 1년간의 성과가 그래프로 표시되었다.


"작년 대비 시장점유율 15% 상승, 고객 신뢰도 1위 달성. 이것이 데이터 기반 영업의 결과입니다."


교육장은 늘 만원이었다. 다른 제약회사 직원들도 벤치마킹을 위해 자리를 채웠다. 의약품 안전성 정보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서, 다섯 개 제약회사가 M제약의 데이터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M제약의 사례를 '제약산업 윤리경영 모범사례'로 선정했다.


어느 봄날 아침, 동호의 책상 위 모니터에는 여전히 숫자들이 깜박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숫자들은 더 이상 압박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새로운 의미를 가진 지표였다.

"과장님, 새로 개발 중인 항암제 데이터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후배가 들고 온 보고서를 검토하며 동호는 생각했다.




허 변호사가 유튜브 방송을 마무리했다.


"오늘 소개해드린 사례는 우리 법조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던 관습들이 어떻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덧.

"君子喻於義,小人喻於利。" (論語, 里仁)

"군자는 의로움을 깨닫고, 소인은 이로움을 좇는다."

논어 리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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