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탑재] 막이 내린 후에도 이어지는 감동, 커튼 콜의 문화사
인간의 역사는 곧 감정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희로애락,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마음속 파도를 일으키는 감정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대 위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 대한 감사는 오랜 세월 동안 인류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바로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숭고한 의례, 커튼 콜이다.
아득한 옛날, 텅 빈 광장에 모여 앉아 신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듣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감동과 환희에 찬 함성을 질렀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비극 배우들이 혼신의 연기를 펼치면, 관중들은 열렬한 박수와 함께 배우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는 어쩌면 커튼 콜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였을 것이다. 로마 시대 검투 경기의 함성은 더욱 직접적이었다. 승리한 검투사에게는 환호와 갈채가, 패배한 자에게는 야유와 냉혹한 시선이 쏟아졌다. 대중의 감정은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냉정하게 표출되었지만, 그 중심에는 공연자에 대한 평가와 존중이라는 의미가 자리하고 있었다. 동양의 전통 연희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아볼 수 있다. 가면극이나 인형극이 끝난 후, 관객들은 묵례나 박수를 통해 공연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화려함보다는 소박하고 정중한 방식으로 존경을 표현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고, ‘막’이라는 장치가 등장하면서 커튼 콜은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18세기 오페라 하우스는 화려한 커튼 콜의 탄생을 알리는 무대였다. 막이 내려오고, 열광적인 박수갈채 속에 다시 막이 오르면, 화려한 의상을 입은 오페라 가수들이 등장해 우아한 인사를 건넸다. 특히,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나 테너에게 쏟아지는 환호는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척도였다. 때로는 앙코르 요청이 쇄도하며, 감동의 여운을 더욱 길게 이어가기도 했다. 발레 공연에서의 커튼 콜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토슈즈 끝으로 전해지는 섬세한 감사의 마음, 우아한 곡선과 함께 펼쳐지는 발레리나들의 인사는 한 편의 짧은 춤과도 같았다.
동서양의 커튼 콜은 각 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서양에서는 기립 박수와 환호, 꽃다발 투척 등 열정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 특히, 스페인 투우장의 ‘올레’ 소리나 브라질 축구장의 함성처럼, 강렬한 감정 표현은 서양 문화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 동양에서는 정중한 묵례나 절과 같은 절제된 방식으로 감사를 표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가부키 공연의 마지막 순서인 ‘오무코’는 배우와 관객이 서로 마주 보며 감사를 표하는 독특한 의식이다. 배우는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로, 관객은 뜨거운 응원으로 서로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의례를 넘어, 공연자와 관객 사이의 깊은 교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커튼 콜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초연 당시, 관객들의 열렬한 반응에 지휘자가 공연을 중단시키고 커튼 콜을 여러 번 진행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라는 강렬한 주제만큼이나, 초연 당시의 감동 또한 엄청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세기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토스카’ 공연은 비극적인 극의 내용과 맞물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을 반영하듯, 커튼 콜 역시 뜨거운 갈채와 함께 깊은 여운을 남겼다. 냉전 시대에는 동서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특별한 커튼 콜이 연출되기도 했다. 분단된 도시에서, 하나의 음악으로 화합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예술은 경계를 넘어 마음을 이어주고, 커튼 콜은 그 연결을 확인하는 숭고한 순간이다.”
과거에는 커튼 콜 때 관객들이 무대 위로 선물을 던지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오페라 가수들에게 꽃다발을 던지는 것은 흔한 광경이었으며, 심지어 보석이나 편지를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스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커튼 콜을 생략하거나 변형하는 경우도 있다. 연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혹은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배우들이 커튼 콜 없이 퇴장하거나, 파격적인 형태의 커튼 콜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는 전통적인 커튼 콜의 형식을 깨는 시도로,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커튼 콜은 단순한 공연의 마무리가 아닌, 인간의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소중한 문화적 행위임을 알 수 있다. 무대 위 배우의 열정과 노력에 대한 존경, 공연을 통해 받은 감동에 대한 감사, 그리고 함께 공연을 즐긴 사람들과의 연대감. 이 모든 감정이 함축된 짧지만 강렬한 순간이 바로 커튼 콜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커튼 콜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커튼 콜은 시대를 초월하여 공연자와 관객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다리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맹자 이루(離婁) 상편에 나오는 “雖有嘉肴(수유가효)弗食(불식)不知其旨也(부지기지야) 雖有至道(수유지도)弗學(불학)不知其善也(부지기선야)”라는 구절은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어봐야 그 맛을 알고, 아무리 훌륭한 도(道)도 배워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커튼 콜 또한 마찬가지다. 직접 공연을 보고, 그 감동을 느껴봐야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 스크린 너머의 감동도 좋지만, 때로는 공연장에서 직접 느끼는 생생한 감동과 함께,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배우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짧은 순간의 울림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