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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일그러진 영웅, 교실과 권력

by 조우성 변호사


우리들이 일그러진 영웅, 교실과 권력 - 미시사회가 비추는 권력의 민낯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는 때로 거대한 사회의 축소판이 되곤 한다. 1987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50년대 말 한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인간 사회에 편재한 권력의 속성을 예리하게 해부한 작품이다. 4·19 혁명 직전의 시대적 상황을 암시하는 이 작품은, 어린 시절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한병태의 시선을 통해 권력의 작동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힘은 진공 상태를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권력은 늘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작품 속 반장 엄석대는 담임교사의 전폭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학급 내 절대적 권력을 구축한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통제 체제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상과 벌을 교묘하게 활용한 지배 체제였다. 우등생들에게는 특혜를 제공하고, 힘센 아이들은 심복으로 삼으며, 약한 학생들은 위협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권력에 대한 구성원들의 태도 변화다. 처음에는 이 체제에 저항하던 한병태 역시 점차 순응하고, 결국에는 체제의 일부가 되어간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이 권력 앞에서 보이는 보편적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항-순응-편입으로 이어지는 이 과정은,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분석한 권위주의적 성격 형성과정과도 맥을 같이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의 속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한비자는 "상과 벌로써 백성을 다스린다(以刑賞治百姓)"고 했는데, 엄석대의 통치술 역시 이러한 원리를 충실히 반영했다. 또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분석한 '규율권력'의 특징들 - 위계적 감시, 규범화하는 제재, 시험이라는 절차 - 이 작품 속 교실 사회에서 그대로 발견된다.


권력의 붕괴 과정도 의미심장하다. 6학년이 되어 부임한 새로운 담임교사는 엄석대의 비리를 포착한다. 시험지를 미리 보고 성적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의 권력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이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필연적으로 부패하며,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없는 권력은 결국 자체적인 모순으로 붕괴함을 보여준다.


작품의 결말부, 성인이 된 한병태가 우연히 마주친 엄석대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과거의 절대적 권력자가 시간이 흐른 뒤 평범한 일상인으로 변모해 있는 모습은, 모든 권력이 결국 한시적이며 상대적임을 상기시킨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턴 경의 경구는,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1950년대 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당시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질서를 암시하지만,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이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부활하는 현상이 목격되는데, 이는 권력의 속성에 대한 경계심이 여전히 필요함을 일깨운다.


한 교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의 보편적 권력 현상을 포착해낸 이 작품은, 우리에게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나약함을 직시하게 한다. 동시에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가 필요함을 일깨운다.


"權不可以假人" (권력은 남에게 맡길 수 없다)

- 한비자(韓非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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