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 조영래와 전태일

by 조우성 변호사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 조영래와 전태일의 기록


1983년,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저자를 알 수 없는 이 책은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후에 '전태일 평전'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1991년에 이르러서야 조영래 변호사(1947-1990)임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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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조인이었다. 197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정치적 이유로 투옥과 수배를 겪었던 그는, 1980년 복권 후 변호사가 되어 1983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열었다. 그는 노동자, 여성, 환경 피해자들을 위한 법률 지원에 헌신했다.


대표적으로 1984년 망원동 수재 사건에서 수해 피해자들을 위한 집단소송을 이끌었고, 1985년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조기정년제 철폐 소송을, 1986년에는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이러한 활동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인권 보호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전태일 평전은 조영래가 수배 생활 중에 집필했다. 그는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청계천 노동자들을 만나며 자료를 수집했다. 책은 출간 직후 판매가 금지되었으나,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금서 조치가 해제되었다. 하지만 저자의 신원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고, 1990년 조영래가 43세의 나이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듬해에야 저자가 밝혀졌다.


전태일 평전의 의미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다. 이 책은 1970년대 한국의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투쟁, 그리고 한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조영래는 이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 기록했고, 이는 후대의 노동운동에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었다.


조영래는 법조인으로서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작가로서 시대의 진실을 기록했다. 시민공익법률사무소는 당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실질적인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그의 활동은 한국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 문제에 직면해 있다.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직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등장하면서, 노동권과 인권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조영래와 전태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노동의 존엄성과 인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사람이다."라는 전태일의 외침을 기록한 조영래의 용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여전히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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