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탑재] 진검승부, 찰나에 꽃피는 생사의 경계
진검승부(眞劍勝負)의 역사는 피로 쓰였다. 가마쿠라 시대의 무사들은 진검으로 목숨을 걸었다. 진검승부는 단순한 승패가 아닌,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었다. 진검으로 맞서던 결투는, 에도 시대에 이르러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죽음의 순간을 정형화한 것이다.
진검승부라는 말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632년 야규 무넨류(柳生武念流)의 병법서에서다. "진검승부에는 후회도 변명도 없다. 오직 일격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은 이후 모든 검도장의 벽에 걸리게 될 운명이었다.
칼은 본디 죽임의 도구였다. 그러나 에도 시대를 지나며 검도는 살인의 기술에서 수행의 길로 변모했다. 나무로 만든 죽도가 쇠로 된 칼을 대신했다. 죽도의 길이는 진검과 같은 120센티미터로 정해졌다. 죽임의 도구가 깨달음의 도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토 이토사이(伊藤一刀斎)는 말했다. "진검승부는 꽃과 같다." 천분의 일초에 피었다 지는 생사의 꽃. 검술의 달인들은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진검승부의 순간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오직 현재만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존재한다.
전일본검도연맹이 정한 타격 부위는 넷이다. 머리와 손목과 허리와 목. 이는 진검으로 베었을 때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자리들이다. 검도는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있되 죽음을 부정한다. 살기를 머금되 살기를 넘어선다. 이것이 진검승부의 역설이다.
동양의 검술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 조선의 무예도보통지는 검을 24가지 무예 중 하나로 다뤘다. 그들에게 검은 전장의 도구였다. 병법서들은 말한다. 칼날은 곧되 마음은 굽어야 한다고. 강철의 곧은 칼날을 휘두르는 자의 마음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유연해야 한다고.
1952년, 전일본검도연맹이 설립되었다. 1970년에는 국제검도연맹이 생겼다. 나무 칼이 세계의 벽을 넘어갔다. 하지만 진검승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 정신과 검과 몸이 하나가 되는 순간, 나무 칼은 다시 진검이 된다.
요즘도 도장에서는 죽도가 울린다. 머리를 치고, 손목을 치고, 허리를 치고, 목을 친다. 죽도는 나무로 되어 있지만, 그것이 그리는 궤적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살과 죽음의 경계를 달리는 일직선의 궤적. 그것은 시간마저 베어낸다.
진검승부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건다. 그렇게 검도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비유가 된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법,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죽음을 상정하되 삶을 긍정하는 법을 가르친다.
"一刀両断"
(일도량단: 한 칼에 두 동강 내다)
-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