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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손길

by 조우성 변호사

겨울 아침, 창가에 앉아 서리가 맺힌 나뭇가지를 바라본다. 그 고독한 가지 끝에서 얼음 결정이 햇살에 녹아내리는 모습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제의 얼음이 오늘의 물방울로, 그리고 내일의 증발로 변모하는 과정이 우리 삶의 여정과 닮아있다.


상처는 시간의 영역이다. 아픔을 겪은 직후에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그 깊이를 메울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처럼, 내 안의 단단한 결의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있었다. 그러나 치유는 결의의 순간적 폭발이 아닌, 시간이라는 강물의 꾸준한 흐름 속에서 완성된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은 마치 별이 빛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도 같다. 우리의 내면에 피어나는 빛은 어둠을 견뎌낸 시간만큼 깊고 아름답다.


동양의 노자는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強)"고 말했다. 물은 바위보다 연약하지만 끊임없는 흐름으로 바위를 뚫는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우리가 느끼지 못할 만큼 잔잔하게 다가와 가장 단단한 상처까지 녹여낸다. 의지의 강함이 아닌 시간의 부드러움이, 후회의 돌덩이를 모래알로 분해한다.


인간은 자신을 시간 밖에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내-존재'로서 우리는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다. 의지란 시간의 흐름 위에 있는 작은 파문에 불과하다. 가장 깊은 아픔조차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한 장의 낙엽처럼 떠내려간다.


슬픔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종종 시간을 적으로 여긴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멈추지 않는 시간이 우리를 구원한다. 마치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처럼,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현재를 창조하며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의 영혼은 마음의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 아픔은 단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고 넓은 인간으로 만드는 거룩한 선물이다.


강물은 흐르면서 자신의 길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흐르면서 우리의 새로운 자아를 조각한다. 의지의 날카로운 도끼질이 아닌, 시간이라는 물의 부드러운 손길이 우리의 영혼을 다듬는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시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이는 체념이 아닌 수용이며, 패배가 아닌 지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인생의 가장 깊은 지혜는 모든 것이 흘러간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찾아온다. 우리가 붙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달아나는 것들을 놓아주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된다.


"시간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면서 파괴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간은 위대한 치유자이다." - 세네카, 「행복한 삶에 관하여」, 기원전 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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