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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 이후의 시간들

by 조우성 변호사

"상실, 그 이후의 시간들"


상실은 갑작스러운 폭풍처럼 찾아온다. 한순간 무너진 일상의 자리에는 견딜 수 없는 공허가 자리 잡는다. 숨을 쉴 때마다 그 사람이 떠오르고,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부재의 아픔이 새롭게 찾아온다.


불교 경전 '테리가타(Therigatha, 장로니의 게송)'의 주석서에는 끼사 고따미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코살라국의 수도 사왓띠에 살던 그녀는 어린 아들을 잃고 미칠 듯한 슬픔에 빠졌다. 죽은 아이를 안고 거리를 헤매던 그녀에게 한 현자가 부처를 찾아가보라 조언했다. 부처는 그녀에게 특별한 과제를 주었다. "죽은 이가 없는 집의 겨자씨를 가져오면 아이를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마을을 돌던 끼사 고따미는 마침내 깨달았다.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이 이미 죽었으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때로는 잔잔히, 때로는 거세게. 그러나 파도가 언제나 바다로 돌아가듯, 우리의 마음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것은 잊어버림이 아니라, 받아들임의 과정이다. 슬픔이 깊은 만큼 그 사랑도 깊었던 것이다.


상실의 숲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겨울을 이겨내며 새로운 나이테를 만드는 것처럼.


때로는 죄책감이 찾아온다. 왜 막지 못했는지, 왜 더 잘해주지 못했는지. 그러나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후회는 현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다. 끼사 고따미가 나중에 부처의 제자가 되어 수행의 길을 걸었듯,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는 깊은 강물과 같다. 처음에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두렵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물결 위에 잔잔한 달빛이 비친다.


끼사 고따미의 깨달음이 250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고통이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우리는 홀로가 아니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같은 아픔을 겪어왔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아픔을 견뎌냈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간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완전한 치유가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 상처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간다. 떠난 이는 우리 안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때로는 따뜻한 기억으로, 때로는 깊은 그리움으로.


인생은 계속된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떠난 이가 바랄 것이다. 다만 가끔은 멈추어 서서 그들을 생각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마음껏 그리워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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