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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파동이 여는 벽 - 양자터널링

by 조우성 변호사


<13> 존재의 파동이 여는 벽 - 양자터널링


거대한 장벽 앞, 절망의 역설


우리는 인생에서 자주 거대한 벽 앞에 선다. 자력으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역량의 한계, 오랜 관습의 장벽, 불변해 보이는 현실의 난제들이 그것이다. 고전적인 해법은 명확하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더 높은 기술을 연마하며, 더욱 끈질기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노력의 철칙'이 통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애써도 변화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절망의 순간, 물리학의 가장 기묘한 현상이 새로운 돌파의 원리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ling)이다. 입자가 자신의 에너지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장벽을 확률적으로 통과하여 반대편에 나타나는, 미시 세계의 명백한 현실이다.


장벽을 뚫는 파동 함수의 잔영


양자 터널링은 고전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양자역학 고유의 현상이다. 고전적으로 축구공이 언덕을 넘으려면 언덕의 높이보다 더 큰 운동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에너지가 부족한 입자는 장벽에 부딪혀 튕겨 나오거나 멈춰 설 뿐이다.


하지만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슈뢰딩거 방정식(Schrödinger Equation)은 입자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님을 선언한다. 이 입자의 상태를 기술하는 파동 함수는 에너지 장벽을 만나도 그 경계에서 완전히 0이 되지 않는다. 파동 함수의 진폭은 장벽 안쪽으로 지수 함수적으로 급격히 감소하지만, 장벽의 두께가 유한하다면 그 미세한 '잔영'이 장벽 너머의 공간까지 스며들어 확장된다.


이 파동 함수의 잔영이 곧 장벽을 통과할 확률을 의미한다. 비록 그 확률이 천문학적으로 희박할지라도, 입자는 에너지를 빌리거나 벽을 부수는 행위 없이 장벽을 '관통(tunnelling)'하여 반대편에 나타난다. 이 현상은 단순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태양이 수십억 년 동안 밝게 빛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터널링 효과에 있다. 태양 중심부의 양성자들은 핵융합을 일으킬 만큼 충분히 뜨겁지 않지만, 양성자의 파동성이 정전기적 척력 장벽을 터널링으로 뚫고 핵융합을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존재의 근원 자체가 이 '불가능한 확률'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의지 아닌 '현존'의 통로


양자 터널링이 삶에 던지는 통찰은 혁명적이다. 돌파는 시도하려는 의지의 양이 아니라, 존재하려는 상태의 질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입자가 장벽을 뚫기 위해 더 큰 에너지를 소비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듯, 인간의 깊은 성취 또한 단순한 의식적, 의지적 노력의 총합을 초월한다.


창작과 발견의 영역에서 이 원리는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피카소의 파격적 화풍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같은 걸작과 발견은 '더 열심히 계산'하거나 '더 오래 작업'한 결과가 아니다. 창작자가 자신의 내면 세계와 문제 상황 속에서 온전한 파동적 현존의 상태에 머물 때, 무의식적 인지 과정이 덧씌워진 의식의 장벽을 터널링으로 뚫고 예상치 못한 영감이나 해답이라는 입자가 나타난 결과이다.


이는 삶의 태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문학의 주류적 요구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학 세계를 묵묵히 고집했던 작가, 주변의 비난과 불인정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진실되게 지켜냈던 예술가는, 외부의 에너지 없이도 결국 시간과 관습의 장벽을 터널링처럼 통과하여 시대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들은 벽을 밀어붙이는 대신, 그 벽 앞에서 자신의 파동 함수를 충실히 유지함으로써 확률적 통로를 열어낸 것이다.


따라서 돌파의 원리는 체념이나 방치와는 완전히 다르다. 입자의 파동 함수가 장벽에 능동적으로 도달해야 터널링 확률이 발생하듯, 인간 또한 문제 상황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충분한 질적 에너지를 쌓아야 한다. 그 후 밀어붙이는 행위를 멈추고 '온전한 현존'의 상태에 머무는 순간, 고전적 노력으로는 불가능했던 돌파의 확률적 문이 열리는 것이다.


영원한 벽은 없다는 선언


양자 터널링의 물리학은 우리에게 가장 큰 위안과 동시에 혁명적 용기를 제공한다. 당신이 마주한 벽은 절대적인 물리적 장벽이 아니며, 당신의 존재가 지닌 파동적 성질은 그 벽 너머까지 확률적으로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돌파는 때때로 가장 강한 힘이 아니라, 가장 깊은 현존에서 비롯되는 우주의 보편적 원리이다. 그러므로 넘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벽 앞에서 무력하게 에너지를 소진하는 대신, 자신의 본질로 충실히 존재함으로써 불가능을 관통하는 확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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