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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Nov 20. 2015

저도 딸만 둘입니다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팀장님. 통보서에 대한 답변서 작성했습니다.”

“아.. 그래?”

G사 법무팀장인 황00 부장은 부하직원인 사내 변호사 김00 변호사로부터 그가 작성한 통고서 출력물을 건네 받았다.


“보시고 수정할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제가 수정한 다음 내용증명으로 발송하겠습니다.”

“음. 알겠어. 일단 내가 좀 볼게.”




G사는 아이스크림과 케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프랜차이즈 본사로서, 약 300여개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서울 강북구 번동의 가맹점주인 권00 사장이 지난 주 G사에 내용증명으로 통보서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본인은 G사 프랜차이즈의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프랜차이즈 계약을 했다. 하지만 막상 영업해보니 적자만 계속 늘어난다.

2) 본인은 이 점포에 들어올 때 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으로 5,000만 원을 줬다. 그리고 인테리어 비용만 3,000만 원이 들었다. 그리고 가맹금으로 2,000만 원을 냈다.

3) 이제 계약을 해제하고 싶으니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합계 8,000만 원을 반환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소송하겠다.


G사가 이런 문제로 내용증명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왜냐하면 가맹점주의 주장이 법적으로는 전혀 타당하지 않기 때문.

프랜차이즈 영업 전망을 좋게 본 데에는 가맹점주의 판단이 중요하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의도적으로 사기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가맹점주를 현혹하지 않은 한은 영업전망이 당초 예상과 다르다고 해서 가맹점주가 계약을 마음대로 해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전 임차인과 후 임차인간에 주고받는 ‘권리금’은 가맹점 본사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입장이다. 나아가 ‘인테리어 비용’에 대해서는 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은 프랜차이즈 계약에 명시되어 있었다.


결국 번동 가맹점주인 권 사장의 주장은 단순한 억지에 불과한 것이어서 이로 인해 가맹본사인 G사가 책임을 질 부분이 없었다. 그 동안 G사 점포 개발팀이 권 사장을 상대했는데, 권 사장을 설득하지 못했기에 권 사장은 G사 대표이사에게 통고서를 보내온 것이다.




G사 경영진은 이런 일이 재발하게 된다면 다른 가맹점주에게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으므로 법무팀에게 법에 따라 최대한 강하게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황 부장은 김 변호사가 작성한 답변서 초안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요지는 이랬다.

1) 귀하는 귀하의 판단으로 본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당사가 제공한 자료는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2) 귀하의 기대와 달리 영업실적이 저조하다는 것은 본 프랜차이즈 계약의 적법한 해제사유가 될 수 없다.

3) 더욱이 권리금에 대해서는 본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 입장이며, 인테리어 비용에 대해서는 계약 내용을 보더라도 본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4) 오히려 본사로서는 귀하의 통고서 내용을 살펴볼 때 더 이상 정상적인 가맹점을 운영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5) 이에 본사는 귀하에게 3개월의 여유를 줄 터이니 그 기간 동안 사업을 정리하고 본사의 모든 간판, 집기, 재료 등을 반납하기를 요청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일체의 손해를 배상청구할 것이다.


“김 변호사, 나랑 번동 좀 다녀오자.”

“네? 그냥 우체국에 가서 내용증명으로 발송하면 되는데요?”

“바람도 쐴 겸 다녀오자.”


이제 G사에 갓 입사한 김 변호사로서는 황 부장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본사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을 가맹점주를 직접 만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번동 가맹점 근처에 도착한 뒤 황 부장은 가맹점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멀찍이 보이는 점포 안에는 사장인 듯한 중년 남자가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고, 그 남자의 무릎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 보이는 여자 아이가 앉아서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었다. 물론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황 부장은 근처 슈퍼에서 홍삼쥬스 1박스를 산 뒤 그 점포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아, 네. 누구시죠?”

“네, 저는 G사에서 나온 황00라고 합니다. 여기 이 친구는 같이 일하는 김00라고 하구요. 더운데 수고 많으십니다.”


황 부장이 자기소개를 하자 가맹점주인 권 사장은 표정이 확 바뀌었다.

“여긴 무슨 일로 왔소? 사람 신세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무슨 염치로 왔냐 말이오?”


김 변호사는 기가 찼다. 아니 도대체 본사가 무얼 잘못했길래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황 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사장님, 날도 더운데 열 내지 마시고 좀 앉으시죠. 저기 아이스크림 2개만 주세요. 돈 내고 먹겠습니다.”라고 넉살 좋게 말하더니 테이블에 앉았다.


권 사장은 하는 수 없이 아이스크림 두 개를 테이블 위에 거칠게 놓았다. 황 부장은 권 사장의 딸인 듯한 아이에게 “예쁜 공주님. 올 해 몇 살이지?”라고 묻자, 그 아이는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8살이예요”라고 조용히 답했다.

“사장님, 그렇게 서 계시지만 마시고 여기 좀 앉으세요.”

황 부장은 부드럽게 권 사장의 팔을 이끌었다.




“사장님은 이거 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건설회사에서 회계를 봤소.”


“아하, 그럼 장사는 처음이시겠군요.”

“그렇소. 그래도 프랜차이즈를 하면 좀 낫겠다 싶어 여기저기서 빚을 내서 시작했는데...”


“사장님은 자제분이 어떻게 되세요? 전 딸만 둘인데.”


“나도 딸만 둘이오. 큰 애는 초등학교 6학년이고 얘가 둘째요.”


“허허, 우리 둘 다 딸딸이 아빠네요. 솔직히 키우는 재미는 딸이 훨씬 좋죠. 안 그렇습니까?”

김 변호사는 황부장의 객쩍은 대화를 옆에서 들으면서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장님, 영업하시는 데 뭐가 제일 힘드십니까?”


“일단 너무 장사가 안돼요. 주위에 학교도 있고 해서 장사가 잘 될 줄 알았는데 완전 꽝이에요. 거기다가 저기 300미터 앞에는 대형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도 들어오고. 도저히 가망이 없어요.”


“사장님, 그렇게 빚을 내서 이 점포를 시작하셨는데, 이거 접고 다시 뭘 하시겠습니까? 다른 뭐 뾰족한 대안이라도 있으신가요?”

“딱히 뭐 그런 것 없소. 하지만 이대로 망할 수는 없잖소?”


“사장님, 제가 방법을 하나 알려 드릴께요. 제가 아는 분이 봉천동 지점에서 우리 프랜차이즈 시작할 때 사장님처럼 완전 의기소침했거든요. 그런데 말이죠...”


황 부장은 권 사장을 앉혀놓고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 이 프랜차이즈는 주위 학교 학생들을 주 타겟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 널리 알리는 방법이 필요하다.

- 본사에서는 생일을 맞은 학교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모션 행사를 하는데, 권 사장은 그 행사 프로그램을 한 번도 신청한 바가 없더라. 한 달에 합법적으로 몇 십만원 정도의 프로모션 이벤트를 할 수 있다. 학교에 들어가서 선생님과 한 번 상의해 보라.

- 학교에 들어갈 때 수위들이 문제될 수 있는데, 학교 수위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선물을 주면서 친하게 접근해라. 그렇게 안면을 터라. 나쁜 짓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뭘 주저하는가.

- 그 때 봉천동 지점에서는 마술사들을 초청해서 자주 이벤트를 했다. 내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으면 아주 저렴하게 그들을 초청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본사에 이야기해서 최대한 비용 지원을 받아주겠다.


권 사장은 처음에는 황 부장의 이야기를 심드렁하게 듣다가 마술사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는 수첩에 메모까지 하면서 열심히 들었다.

“사장님. 봉천동 지점도 처음에는 고전했습니다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매출이 정상화 됐습니다. 사장님도 할 수 있습니다.”

황 부장은 한 시간이 넘게 자기 살아온 이야기까지 들려주면서 권 사장을 설득했다.


“알겠습니다. 사실 나도 다른 대안이 있는 건 아니라서... 거의 자포자기상태였는데 한 번 해 보겠소. 부장님이 많이 도와주시오.”

권 사장도 의지를 다졌다.




본사로 돌아온 황 부장은 점포개발팀과 마케팅팀을 오가면서 번동점의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번동 주변 학교를 중심으로 한 프로모션 행사 관련해서는 본사 차원에서 학교 측에 공문을 보내 생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교 행사에 협찬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학생회 측과 협의를 진행했다. 학생회 측에서는 협찬에 대해 대환영이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마술사 팀을 초청해서 점포에서 작은 공연을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이들에게 이끌

려온 엄마들로 인해 점포에 발을 디딜 틈이 없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번동 점의 매출은 정상화됐고, 더 놀라운 것은 300미터 떨어진 대형 케익 프랜차이즈점이 문을 닫고 업종을 변경한 것이다.


“진짜 한 방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황 팀장님은 법대를 나오신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처음 법무팀에 배정받아 갔을 때 ‘팀장에게서는 별로 배울 게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짧았죠. 저는 대법원 판례, 계약 조항상의 권리를 들먹이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팀장님은 그 사장님을 곤란에 빠진 한 사람으로 보고 마음을 다해 대하셨던 거죠.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이제 갓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후배 김 변호사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황 팀장님의 구수한 인상과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분쟁을 분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아픔을 관찰하고 어루만질 수 있을 때, 우리는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제 사례다. 권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어준 단 한 사람이 바로 황 팀장이었던 것. 그야말로 ‘경청’은 인간을 위대하게 해 주는 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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