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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Nov 20. 2015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형사책임의 한계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예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세 모녀 자살사건. 생활고에 못 이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 그 사건을 두고, 양심 있는 지식인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과연 어떤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런 부분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형법학의 ‘인과관계론’이다. 형법의 해석상 중요한 ‘인과관계론’을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살펴보자.

 


몬테규 (Montague) 가문과 카퓰렛 (Capulet) 가문은 오랫동안 원수처럼 지내왔다. 몬테규 가문의 로미오는 자신이 사모하는 로잘린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카퓰렛가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하는데, 거기서 줄리엣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은 서로에게 반했지만, 서로의 집안이 원수지간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로미오는 늦은 밤 줄리엣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가 줄리엣과 밤새 사랑의 밀담을 나눈다.

 

로미오의 이러한 적극정성에 처음에는 망설이던 줄리엣도 용기를 내어 둘은 비밀리에 결혼을 약속한다.

 

다음날, 둘은 로렌스 신부를 찾아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시오가 줄리엣의 사촌인 티벌트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로미오는 이성을 잃고 티벌트에게 결투 신청을 한다.

 

그 결과 로미오의 손에 티벌트가 죽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줄리엣은 비탄에 빠진다.

 

재판을 받은 로미오는 추방선고를 받는다. 슬픔에 잠긴 로미오에게 로렌스 신부는 줄리엣에게 가서 그녀를 위로해줄 것을 권한다. 둘은 어렵게 만나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다음 날 로미오는 떠나고, 남겨진 줄리엣은 슬픔에 빠져 있는데, 그걸 본 줄리엣의 아버지는 사촌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는 서둘러 줄리엣을 파리스와 결혼시키려 한다.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게 된 줄리엣은 로렌스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고민 끝에, 로렌스 신부는 그녀에게 약을 건네는데, 그 약을 먹으면 이틀 정도는 죽은 것처럼 되다가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줄리엣은 이 약을 먹고 가짜 장례를 치른 뒤, 잠에서 깨어나 로미오와 함께 떠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줄리엣은 혹여나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는 그 계획에 찬성하고, 약을 마신다.

 

약을 마시고 죽은듯한 상태에 있는 줄리엣을 유모가 발견하고, 모두들 비탄에 빠진 채 줄리엣의 장례식을 치른다.

 

한편, 로렌스 신부는 줄리엣이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로미오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공교롭게도 편지를 전달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겨, 로미오는 이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로미오는 충격에 휩싸인 채 줄리엣의 시신이 있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고, 창백하게 누워있는 줄리엣을 본다. 로미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줄리엣이 죽은 줄로만 알고, 줄리엣의 입술에 키스하고 자신도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 깨어난 줄리엣은 자신의 곁에서 죽어있는 로미오를 보고 또다시 오열한다. 그리고 로미오의 단검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로미오가 편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로렌스 신부는 그제야 허겁지겁 무덤에 가보지만, 때는 늦었다. 둘은 죽어있고, 신부는 땅을 치며 후회하고, 두 가문에 이 사실을 알린다.

 

두 가문은 모두 슬픔에 잠기고, 뿌리 깊은 증오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두 사람을 보고는 이제 서로 친하게 지내자고 화해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카퓰렛 가문의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줄리엣이 자살한 데에는 로렌스 신부가 약을 건네준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굳이 정리해 보자면

 

로렌스신부가 약을 건네줌(A) ⇒ 줄리엣이 약을 먹고 죽은 척함(B) ⇒ 로미오가 이를 보고 자살(C) ⇒ 줄리엣이 로미오가 죽은 것을 알고 자살(D)

 

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로렌스 신부에게 줄리엣의 자살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형법에서는 이 문제를 ‘인과관계론’이라는 이름으로 다룬다.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 때, 그 결과의 원인을 어느 범위까지 소급해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의외로 이런 인과관계가 문제 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보면

 

A. 추월적 인과관계

 

갑이 병에게 독약을 먹였는데 그 약효가 일어나기 전에 을이 병을 사살한 경우 갑에게 병 사망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병이 사망한 직접적 원인은 아무래도 을이 아닐까?)

 

B. 중첩적 인과관계

 

갑과 을이 단독으로 치사량이 되지 못하는 독약을 병에게 먹여 병이 사망한 경우. 즉, 갑만 병에게 독약을 먹였다면 병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인데. 을이 일정한 양의 독약을 더 먹이는 바람에 병이 사망한 것이다. 이 경우 갑에게 병의 사망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C. 단절적 인과관계

 

갑이 을을 살해하기 위해 을에게 상처를 입혔으나 을이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거나, 병원에서 치료하는 의사의 과실로 사망한 경우 갑에게 을 사망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병이 사망한 직접적 원인은 아무래도 교통사고나 의사의 과실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결국 어느 범위의 행위까지를 의미 있는 인과관계 범위로 정할 것인가에 관해서 여러 가지 입장이 있는데, 대표적인 몇 가지만 소개한다.

 

(1) 조건설

 

행위와 결과 사이에, 그 행위가 없었다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관계가 있으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하나의 결과에 대한 모든 조건은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이 입장은, 형법상 중요한 조건과 중요하지 않은 조건을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행위가 결과에 대한 조건을 이루었다면 모두 범죄성립에 관여한 것으로 본다.

 

다만 이 입장을 취할 경우 인과관계의 범위가 너무 확대될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극단적인 조건설 입장이라면 살인자의 어머니가 살인자를 출산한 것도 살인행위에 하나의 원인이 된다고 본다.

 

(2) 원인설

 

조건설을 다소 수정하여, 결과의 발생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준 조건’과 ‘단순한 조건’을 구별하여, 전자를 ‘원인’이라 한 뒤, 원인이 될 조건에 대해서만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를 인정하려는 입장이다.

 

(3) 상당인과관계설

 

경험칙상 그 결과를 발생케 한다고 보기에 상당하지 않은 모든 조건은 결과귀속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비정상적이고 특수한 사정이 연관되어야 해당 결과가 발생한다고 인정되면 그 행위는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우리 대법원이 취하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물론 상당인과관계설 역시 모든 사건에 있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고 개별 케이스마다 다소간의 판단이 필요하다.

 


다시 처음 논의로 돌아가 보자.

 

로렌스신부가 약을 건네줌(A) ⇒ 줄리엣이 약을 먹고 죽은 척함(B) ⇒ 로미오가 이를 보고 자살(C) ⇒ 줄리엣이 로미오가 죽은 것을 알고 자살(D)

 

카퓰렛가 가문의 입장에서는 A가 없었다면 D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A란 행위는 D발생의 중요한 조건에 해당하며, 따라서 로렌스 신부는 쥴리엣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조건설의 입장에서도 그러하다.

 

하지만 우리 법원이 따르고 있는 상당인과관계설의 입장에서 본다면 과연 A라는 행위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C와 D가 필연적으로 발생하였을 것이냐는 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A에서 B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그다음에 이루어진 C와 D는 다분히 특이한 경우들(로렌스신부의 편지가 로미오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점, 로미오가 줄리엣의 사망 이유에 대해 좀 더 확인해 보지 않았던 점)이 결합된 것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

 

따라서 상당인과관계설의 입장이라면 줄리엣의 자살에 대한 로렌스 신부의 책임을 바로 묻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결과는 결코 한가지의 원인에 의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하나의 결과를 맺기 위해 여러 개의 원인들이 서로 상호작용과 협력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개입된다.

 

이미 발생한 범죄결과에 대해 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을 모두 처벌한다면 이는 죄형법정주의가 추구하는 ‘형벌법규의 명확성’에 반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이 과정에서는 ‘책임을 어느 범위까지 물을 것인가’라는 작업이 진행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과관계론’이다.

 

그 인과관계를 어떻게 인정하는가에 따라 처벌될 사람의 범위가 달라지므로 이는 형법상 아주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에 대해 ‘난 아무런 책임이 없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문득 생각해 본다.

 

이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다면, 반대로 나 역시 이 사회에 일정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온 세상은 서로 얽히고설켜서 돌아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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