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례는 사실에 근거했지만 의뢰인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중요한 부분은 변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김봉학(가명, 이하 동일), 김병학, 김영학 3형제.
20년 전에 선친이 작고하면서 선친 명의로 되어 있던 경기도 강화의 논 5,000평은 셋째인 김영학 씨 단독 명의로 이전했다.
그 이유는, 첫째인 김봉학 씨와 둘째인 김병학 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계속 서울에서 사업과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공부에 별로 취미가 없던 막내 김영학 씨는 시골에서 계속 농사를 짓고 있었기에, 논에 대한 소유권은 막내 김영학 씨가 갖기로 하고, 대신 논에서 생산되는 쌀 중 20퍼센트 정도를 매년 첫째와 둘째에게 보내 주고 나머지는 막내가 직접 소비하거나 팔아서 생계에 보태기로 형제들 간에 합의를 했던 것이다.
막내 김영학 씨는 20년 가까이 농사를 지었고, 첫째인 김봉학 씨는 사업이 잘 되던 때도 있었으나 부도를 맞아 오랫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둘째인 김병학 씨는 중소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나 경제 상황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강화에 있는 논은 별 값어치가 없었다. 단지 김영학 씨가 생계 수단으로 20년 가까이 농사를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발생했다.
김영학 씨 명의의 논을 포함한 주위 일대가 개발지역으로 고시되고, 정부에 의해 수용이 결정되면서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이 났는데, 김영학 씨 명의 논의 경우 수용 보상금으로 약 100억 원 가량이 책정된 것이다. 평생 농사만 짓던 김영학 씨 입장에서는 뜻하지도 않은 횡재를 만난 셈이다.
김영학 씨의 두 형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영학 씨로는 그 땅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지만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었기에 형들과 같이 공동 재산이라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보상금을 받더라도 형들과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이 김영학 씨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한 장의 각서를 김영학 씨 앞에 내밀었다.
김영학 씨는 평생 농사만 짓던 사람이었기에 각서에 쓰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두 형은‘전문 변호사로부터 감수를 받은 것이니 문제없다’면서 그 각서에 서명날인하라고 다그쳤다.
그런데 얼핏 보니 논에 책정된 보상금을 첫째 50퍼센트, 둘째 35퍼센트, 셋째가 15퍼센트 나눠 갖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김영학 씨는 자신의 지분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두 형은 “이미 오랫동안 네가 이 땅을 이용해 왔었고, 또 원래 상속법상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막내보다는 많이 가져가게 되어 있다”라는 식으로 설명해서 김영학 씨는 그런가 보다 하고 할 수 없이 서명날인을 했다.
나를 찾아온 것은 김영학 씨의 아들인 김제형 씨였다. 제형 씨는 울분을 터뜨렸다.
“우리 아버님 말입니다, 그 뙤약볕 아래서, 그리고 비바람 맞으시면서 농사지으셨구요, 저도 그랬습니다. 가을에 추수하면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은 형들이지만 꼬박 꼬박 가마에 쌀을 담아서 보냈습니다.솔직히 할아버지 명의의 논을 우리 아버지 앞으로 넘겼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큰아버지들이 다 동의하신 것이고, 그리고 그 분들은 이 논에 관심도 없으셨다구요.. 지난 20년간 이 논에 대한 세금은 전부 우리가 냈단 말입니다.”
나는 제형 씨의 아버지가 서명 날인한 각서를 건네 받은 후 그 내용을 찬찬히 검토했다. 주요 내용은 이랬다.
1) 김영학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는 경기도 강화군 000 소재 답(畓 ; 논) 5,000평에 대해 배당되는 수용 보상금 중 50퍼센트를 김봉학에게, 35퍼센트를 김병학에게 지급하기로 한다.
2) 한편 그 동안 위 논을 활용해 농사를 지어 온 김영학은 그 이익을 두 형들에게 반환한다는 의미에서 위 1항에 따른 금액 분배 과정에 발생하는 제세공과금 일를는 김영학이 부담하기로 한다.
“이 내용은 아버님에게 아주 불리한 내용인데, 왜 아버님은 여기에 덜컥 서명하고 도장 찍으신 거죠?”
“아버님도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큰 아버님 두 분이 윽박지르기도 하시고,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 법상 맞는 거라고 말씀하셔서 그냥 서명하고 도장 찍으셨다고 합니다. 협박당해서 서명했기 때문에 이 각서는 효력이 없는 것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우리 민법에 보면 협박을 당해 공포심에서 계약을 하면 나중에 이를 무효로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이 ‘협박을 당했음을 인정해 주는 범위’는 아주 좁은 편입니다. 흉기로 위협을 당했다는 등의 위협이 없이 단지 형들이 윽박지른 정도 가지고는 각서를 무효로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상담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형들의 욕심이 심해 보였다. 특히 ‘제세공과금까지도 전부 김영학이 부담한다’는 부분은 김영학 씨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독소 조항이었다.
현재 논의 명의는 김영학 씨 앞으로 되어 있으므로, 보상금은 일단 김영학 씨 앞으로 귀속되었다가 다시 두 형들에게 분배된다. 그렇다면 세금은 최초 100억 원이 김영학 씨에게 배정될 때 한 번 부과되고,그 돈 중 일부가 다시 두 형들에게 지급될 때 또 한 번 부과된다. 그런데 각서에 따르면 그 제세공과금을 전부 김영학 씨가 부담하기로 되어 있으므로, 100억 원의 보상금을 받아 본들 김영학 씨가 실제로 손에 쥐게 되는 보상금은 5억 원도 안 될 것 같았다.
“아버님은 항상 큰아버지들 자랑을 하셨습니다. 아버님과는 달리 큰아버지들은 공부도 잘하셔서 서울로 대학도 가시고 좋은 직장에도 취직하고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한 분은 사업에 실패하셔서 빚이 꽤 많으시고, 또 한 분은 봉급쟁이로 근근이 생활하시다가 이번에 보상금이 나오니 완전히 눈이 뒤집히신거죠. 아버님은 이제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각서를 무효화시키고 정당하게 1/3씩 받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변호사님, 도저히 방법이 없겠습니까?”
변호사로서, 이미 의뢰인이 서명, 날인한 문서(계약서나 각서)를 무효화시켜달라는 요구를 받게 될 때가 가장 난감하다. 왜냐하면 법원에서는 이런 요구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서명, 날인한 문서’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그 문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효력을 발생한다고 인정한다, 그 만큼 어느 문서에 서명, 날인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두 형들의 욕심 때문에 평생 농사만 지었던 막내가 100억 원의 보상금 중에서 겨우 5억 원 미만을 챙길 수밖에 없는 결과가 된다고 하니 이는 형평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좀 더 연구해 보겠다고 말하고 의뢰인을 돌려보냈다. 말 그대로 묘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관련 법조문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던 나는 무릎을 쳤다. 묘안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워낙 ‘묘한 대안’이라 의뢰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었다. 다시 사무실을 찾은 제형씨에게 내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꺼냈다.
“제가 계속 고민해 봤는데,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좀 걱정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괜찮습니다. 지금 저와 아버지가 믿을 분은 변호사님 밖에 없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나는 차근 차근 설명을 했다.
“논은 일단 아버님 명의로 되어 있으니 보상금은 아버님에게 먼저 귀속이 됩니다. 그 다음에 그 보상금을 큰아버지 두 분에게 ‘무상’으로, 즉 아무런 댓가를 받지 않고 배분하는 것이므로 이는 법상 ‘증여’가 됩니다. 문제의 각서가 바로, 아버님이 큰아버지께 ‘보상금을 증여하겠다’는 내용을 기재한 것입니다.아버님은 현재 이 증여 자체를 무효화시키고 싶으신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증여를 해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 이 방법은 내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민법 조문을 다시 살펴보다가 떠오른 생각이었다.
우리 민법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가 규정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증여를 받은 자가 증여를 한 자 또는 그 배우자나 아들에게 범죄행위를 한 때’이다.
다시 말해서 증여를 받은 김봉학, 김병학 씨가 증여를 하기로 한 김영학 씨나 그 아들인 김제형 씨에게 무언가 ‘범죄행위’를 한다면 김영학 씨는 증여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제형 씨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범죄행위라 하심은 어떤 것을 의미하시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물었다.
나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다양한 범죄 행위가 다 포함되지요. 가장 흔한 것이 폭행이나 상해와 같은...”
제형 씨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 제형 씨가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는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이겁니다. 아버님과 제 상해 진단서입니다.”
제형 씨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요지는 이랬다.
추석날 저녁 온 가족이 다 모였을 때, 제형 씨는 큰 아버지들에게 각서의 부당성을 거론했다. 평상시 같으면 제형 씨의 아버지인 김영학 씨가 이를 보고 말렸을 텐데 그 동안 참아왔던 김영학 씨도 억울한 마음에 같이 항변을 했다.
항상 고분고분하던 막내 동생(김영학 씨)이 정색을 하고 대들자 형들(김봉학, 김병학 씨)은 버릇없다면서 김영학 씨와 그 아들인 제형 씨를 밀치고 뺨을 때렸다.
김영학 씨는 밀려 넘어지면서 장롱에 부딪혔고, 결과적으로 김영학 씨는 전치 2주, 아들인 제형씨는 전치 1주의 진단서를 병원으로부터 발급 받은 것이다.
평소 두 형들이 얼마나 막내 동생을 무시하고 있었는지 그 일만 봐도 짐작이 갔다.
나는 제형 씨로부터 건네 받은 진단서를 첨부하여 김봉학 씨와 김병학 씨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재한 통보서를 발송했다.
이 내용증명을 받은 김봉학, 김병학 씨는 법률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 본 결과 내가 보낸 내용증명의 말이 법상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보낸 내용증명대로라면 각서의 효력은 무효가 되는 것이므로, 위 논에 대한 보상금은 전적으로 논의 명의자인 김영학 씨에게 귀속되는 것이고 두 형은 아무런 권한을 갖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두 사람은 과도한 욕심을 내고 거의 대부분의 보상금을 차지하려다가 한 푼도 못 건지게 된 것이다. 급기야 두 사람은 김영학 씨를 찾아와 크게 사과하고 마음을 돌릴 것을 요청했다. 결국 그 3형제와 김제형 씨는 내 앞에서 다시 합의서를 작성했다.
새롭게 작성한 합의서의 주된 내용은 “보상금은 3형제가 1/3씩 가지며, 제세공과금 역시 1/3씩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김영학 씨는 전체 100억 원 보상금 중 제세공과금을 제외한 25억 원 가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분쟁 속에 뛰어 들어 한쪽 편에 서서 상대방과 싸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때로는 전체적인 구도에서 가장 바람직한 결론을 내도록 판을 짜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도 있다.
100억 원이라는 보상금이 삼형제 중 두 사람의 눈을 잠시나마 멀게 했다. 하지만 묘한(?) 컨설팅으로 인해 세 사람은 공평하게 몫을 나누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것이 아마 돌아가신 선친의 뜻이기도 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