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 1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수씨(23세)가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철구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철구씨가 대리운전 콜을 받고서 술 취한 손님 차를 대신 몰았는데, 손님이 아파트 입구 길가에서 차를 세우라고 하더니 자기가 몰고 가겠단다. 그런데 약속했던 대리 비용을 깎자고 요구해서 철구씨랑 실랑이를 벌였다. 돈을 다 받지 못한 철구씨는 손님이 차에 올라 차를 운전해 가는 모습을 몰래 휴대폰으로 촬영했고, 다음 날 손님에게 전화를 했다. 손님 연락처는 전날 대리 콜 신청을 받으면서 확보하고 있었다.
철구씨는 손님에게 ‘당신이 어제 음주운전한 영상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영상을 보내줬다. 영상을 경찰에 제출하겠다고 하자 겁을 먹은 손님이 만나자고 하더니 200만 원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 다니는 회사가 대기업이래. 그리고 차를 갖고 움직여야 하는 일이 많은데 음주운전으로 형사처벌 받거나 면허정지 받으면 회사에서 큰 문제가 될 거라면서 완전 쫄았더라구. 사실 그 정도로 겁 줄 생각은 없었는데...”
# 2
며칠 뒤 동수씨는 자정 넘어 콜 전화 안내를 받고 구로동에 가서 술에 취한 손님으로부터 차를 넘겨 받은 다음 대신 운전해서 상계동까지 갔다. 상계동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자 뒷자리 손님이 동수씨에게 말했다.
동수씨는 술 드셨는데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손님은 ‘괜찮다’면서 운전대에 올랐다.
순간 동수씨는 며칠 전 철구씨가 해 준 얘기가 퍼뜩 떠올라 몰래 휴대폰으로 그 장면을 촬영했다. 그때 당시로는 딱히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진 않았지만 손님이 술 취한 채 운전대를 잡는 것을 보자 철구씨의 말이 떠올라 엉겁결에 촬영을 했다.
다음날 동수씨는 촬영한 동영상을 돌려보며 고민하다가 어제 손님 전화로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동영상도 첨부했다.
# 3
외근 중이던 차준혁씨(38세)는 동수씨가 보낸 문자를 한참 동안 쳐다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준혁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이렇게 문자를 보낸 것 자체가 법상 문제 없는지에 대해. 변호사는 문자를 보낸 것 자체를 협박으로 볼 수도 있고, 만약 상대방이 돈을 요구하고 그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나오면 형법상 ‘공갈죄’에 정확히 해당될 것이라 대답했다.
동수씨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만난 자리에서 준혁씨는 겁을 먹은 체 하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 드리면 될까요? 겁이 나서 일이 손에 안 잡힙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동수씨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동수씨는 대화내용을 몰래 녹음하고 있었다.
음주운전에 대해 신고할 것처럼 하면서 돈을 요구했으니 변호사 설명대로 공갈죄 당첨이다!
# 4
“선배, 이런 놈은 진짜 혼 좀 나야 돼요. 녹음도 했으니 공갈죄로 고소할 수 있죠?”
“그러다가 너도 음주운전이 문제되면 서로 피곤해질 텐데? 일을 너무 크게 만드는 거 아냐?”
# 5
동수씨는 준혁씨와 만난 이후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목돈이 생길 것 같아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어머니, 여동생과 같이 사는 동수씨.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가 최근 빙판에 넘어져 다리가 골절되었다.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는 여동생 월급과 동수씨 대리운전비가 수입의 전부인데, 어머니 수술비, 치료비, 약값 등을 대기가 만만치 않아 고민하던 중이었기에 동수씨가 이런 간 큰 일을 벌였는지도 모른다.
동수씨가 오후 늦게 어머니와 함께 병원 통원치료를 다녀오자 유치원에서 돌아온 동생 수연씨가 동수씨를 집 밖으로 불러냈다.
수연씨가 내민 것은 동수씨 휴대폰. 아까 집에 두고 병원 다녀왔나 보다.
“전화가 하도 울려서 내가 대신 받았는데, 그러다 오빠가 딴 사람에게 보낸 문자랑 영상을 봤어. 왜 그랬어? 응?”
동수씨는 당황해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수연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동수씨는 머리를 감싸안았다.
# 5
준혁씨는 고소장이 다 작성됐다는 선배 변호사의 연락을 받았다.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서 동수씨에게 전화를 해서 한바탕 욕을 해 줄 작정이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동수씨였다.
어? 죄송하다고?
준혁씨가 아직 공갈죄를 문제 삼기도 전인데 왜 이러지?
준혁씨는 동수씨에게 전화를 해서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울먹이는 동수씨의 설명에 준혁씨도 당황했다.
동수씨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 6
준혁은 이렇게 동수씨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
동수씨는 풀죽은 목소리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나와 준혁 앞에서 설명했다.
나는 이렇게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얘기 들으셨겠지만 준혁씨는 동수씨를 상대로 공갈죄로 고소하려고 했습니다. 녹음한 증거도 다 있구요. 하지만 동수씨가 이렇게 사과하니 준혁씨도 이 일을 없던 일로 하려고 합니다. 동수씨도 더 이상 준혁씨를 상대로 음주운전 가지고 시비 걸지 않기로 하구요. 그런 내용으로 제가 합의서 쓰겠습니다. 괜찮죠?”
동수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노트북으로 합의서 문안을 만들었다.
준혁은 동수씨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을 건넸다.
“동수씨, 아니 동수군이라고 해도 되겠지? 내 조카뻘이니... 지금 대리운전만 하고 있는 거야? 월수입이 얼마쯤 되노?”
“새벽까지 콜 열심히 받아 운전해도 회사에 내는 수수료랑 교통비, 통신비 빼면 한 60-70만 원 정도 됩니다.”
# 7
나는 합의서 문안을 완성한 다음 출력해 와서 두 사람 앞에 내놓았다.
합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준혁은 동수씨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군대 얘기만 나오면 눈에 힘이 들어가는 준혁은 역시나 동수씨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과도한 스킨십을 구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