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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Dec 28. 2015

그 친구 불쌍하잖아요 - 기업분쟁연구소 탄생비화(?)

남자들에게 군대는 다양한 색깔로 기억된다. 지나간 세월은 다 아름답다고 하지만 군대는 그 억압성 때문에 악몽의 단골테마가 되기도 한다.     


내 군 생활은 좀 특이했다. 


내가 군대를 가던 당시만 하더라도 사법시험을 합격한 사람 중 군미필자는 군법무관으로 36개월간 복무해야 했다. 군법무관은 여러 보직 중 하나를 맡는데, 나는 그 중 ‘사단(師團) 군검찰관’ 업무를 담당했다.


군검찰관은 군인들이 형사문제(탈영, 구타, 보안사고 등)를 일으킬 경우 이를 처벌하는데 사회에서의 ‘검찰’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나는 1994년 5월 육군 모 사단 ‘법무부’에 배속되었다. 

사단 법무부 식구는 법무참모(대위), 군검찰관(중위), 선임하사(원사/상사), 법무병(일반 병사)로 구성된다. 

별탈 없이 잘 굴러가던 우리 법무부에 마뜩찮은 일이 생긴 것은 1994년 11월 중순경.     




“검찰관님. 신건이 접수됐네요. 이 녀석 좀 골치 아픈데요?”


나는 법무부 선임하사인 최 상사가 건네 준 수사기록을 펼쳐보며 범죄사실을 확인했다.     


“피의자 양진수(가명)는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1994년 11월 20일, 000소재 X사단 00연대 ** 대대 화장실에서 문구용 커터칼로 자신의 오른 속목을 두 차례 그어 전치 3주에 이르는 자상(刺傷)을 가한 것이다.”     


“이렇게 제 몸에 칼 대는 놈들은 좀 힘들어지면 또 이런다니까요. 그냥 감옥에서 얌전히 지내다가 만기 채우고 나가주는 게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겁니다. 쯧쯧...”     


사병들이 죽거나 다치는 인사사고가 발생하면 본인도 본인이지만 그 지휘관들이 전부 문책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소위 이런 사병들은 ‘문제사병’으로 분류되는 것이 군대에서의 불문율.     


‘자기 몸을 다치게 했는데 처벌을 받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군인 몸은 자기 것이 아니라 나라 소유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군형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타당한 말이다.      


군형법 제41조 제1항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신체를 상해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적전(敵前)인 경우: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2. 그 밖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군인은 국방을 위한 전력(戰力)이요 자원(資源)이므로, 이를 함부로 상하게 하는 행위는 군형법 상 ‘근무기피목적사술죄’에 해당되고, 통상 제대할 때까지 감옥에서 생활하도록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나는 최 상사에게 양 이병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물었다.     


“주임상사가 그러더군요. 양 이병은 자대(自隊) 배치 받을 때부터 고문관이었답니다. 팔굽혀펴기를 3개도 못 한다네요. 거기다 행동도 느리고. 중화기 대대 소속이라 무거운 장비 들고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매번 말썽이었죠. 이번이 3번째 자살기도랍니다. 자대에서는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입니다.”     


‘근무를 기피할 목적’이라는 군형법상 문구에 눈이 머물렀다. 과연 양 이병에게 ‘근무를 기피할 목적’이 있었을까? 양 이병은 ‘근무를 기피할 목적’이 아니라 ‘죽을 목적’이 더 크지 않았을까?


하지만 죽어버리면 당연히 근무를 못하게 되니 결과적으로는 근무기피목적에 해당될 터. 법적으로만 따져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사건이다. 절차에 따라 기소하면 군사법원은 징역 2년형을 선고할 것이다.     




조금 후 노 법무참모(대위)가 사단장 보고를 마치고 법무부로 돌아왔다.     


“검찰관, 최 상사 두 분. 잠깐 제 방으로 오실래요?”


법무참모의 호출에 나와 최 상사는 참모실로 들어갔다.     


“양해를 좀 구합니다. 이번에 근무기피목적사술죄로 구속된 양 이병 있죠? 우리 법무부에서 제대할 때까지 데리고 있으려 합니다. 방금 사단장님께 결재받고 오는 길입니다. 법무병으로 보직변경될 거구요.”     


“네?”


최 상사와 나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최 상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간청하듯 말했다.     


“참모님. 그런 사고뭉치를 법무부에 데리고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 친구가 자살이라도 하면 참모님이나 저나 징계 받을 게 뻔한데...”     


법무참모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최 상사의 동의를 구하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 불쌍하잖아요.”     


평소 원칙을 강조하며 군기잡기로 유명한 법무참모 입에서 ‘불쌍’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다니... 나는 적잖이 놀랐다.


“구속된 그 친구 만나봤는데, 참 착해요. 체력이 안 되는 애를 중화기대대로 배치하면 어쩌자는 건지... 다행히 컴퓨터를 잘 다루더군요. 제 방에 작은 책상 하나 놓고 밀착 관리하겠습니다. 두 분 신경 안 쓰이게 할 테니 제 뜻을 따라 주시죠.”     


법무참모가 사단장께 이런 제안을 했을 때 사단장도 깜짝 놀랐단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사단장님은 법무참모로부터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서야 양 이병을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친구 이대로 전과자 만들어서 내보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젊은 애 하나 살린다 생각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줍시다. 부탁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단 법무부의 막내로 들어오게 된 양 이병.


전입신고를 하는데 표정이며 자세며, 잔뜩 주눅 든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했다. 최 상사는 착잡한지 담배만 계속 피워 댔다.     


법무참모는 자기 방에 책상과 의자를 추가로 마련하고 그 곳에 양 이병을 앉혔다. 1994년 당시만 해도 군대 내 컴퓨터 보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법무참모는 자비를 들여 용산에서 컴퓨터를 구입한 후 양 이병에게 주었다.


양 이병은 법무참모의 ‘전속 PC병(兵)’이 되었다. 


나나 최 상사는 양 이병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에 가득 찬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거 한 번 보세요! 양 이병이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정말 깔끔하지 않나요?”     


법무참모는 양 이병이 작성한 보고서를 수시로 나와 최 상사에게 들고 와서 자랑했다. 마치 ‘양 이병 잘 해내고 있는 거 보이죠?’라는 시위라도 하듯.     


양 이병 표정이 점점 바뀌어 갔다. 실없는 농담도 했다. 


수요일 전투체육 시간에는 같이 족구도 하고 막걸리도 마시며 한 식구로 동화돼갔다.      

어느 날 양 이병의 어머니가 떡이랑 음식을 해 왔다.


법무참모실 바깥으로 나지막히 흘러 나오던 양 이병 어머니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 살려주셔서...”라는 인사말을 들으며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1995년 5월 초.     


나는 다른 부대로 전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법무참모와 작별인사를 하는 날. 거수경례를 하고 전출신고를 하는데 핑 눈물이 돌고 목이 메었다. 


‘아니 이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스타일 구기게...’


연인 간에 헤어지는 것도 아닌데...

법무참모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냥 가슴이 먹먹했다.     


“조 검찰관, 남은 군 생활 잘 하고, 우리 언젠가 인연이 되면 같이 법조인으로서 일해 봤으면 합니다. 건강하세요.”


법무참모의 마지막 덕담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나는 1997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노 법무참모도 그로부터 몇 년 뒤 군에서 전역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서로 바쁘게 지내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소식을 주고 받았다.     




2013년 5월.     

나는 18년간 근무한 대형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 생활을 마감 짓고 중규모  부띠끄형 로펌을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즈음 나는 노 법무참모, 아니 노수철 변호사께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님, 우리 이제 같이 일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예전에 제게 그러셨잖아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같이 일해 보자고?”     


그렇게 나와 노수철 변호사는 2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2013년  6월, 다시 의기투합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기업분쟁연구소(cdri)'다.   http://www.cdri.co.kr/     



“그 친구 불쌍하잖아요”라는 측은지심을 가졌던 노 변호사님. 그리고 그 마음에 감동했던 나.

좋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되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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