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
이 글귀가 적힌 기록은, 마치 땅속에서 찾아낸 물건처럼 메마른 사실만을 전한다. 매는 잠든 듯 가만히 있고, 호랑이는 아픈 것처럼 움직인다. 겉모습 아래 감춰진 날카로운 발톱, 잔뜩 힘준 근육을 밖에서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 그 침묵은 본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더 외롭게 만드는 모습일까. 사회는 그런 알 수 없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함이 어디에 있는지, 칼날이 아닌 칼집의 부드러움에서 찾으려 했던 때가 있었다. 노자(老子)가 남긴 "아주 부드러운 것이 아주 단단한 것을 이긴다(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는 말은 그런 생각을 보여주는 기록 가운데 하나다. 날카로운 기운을 드러내는 것은 덜 자란 표시이거나,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칼날이 칼집 안에서 제 모습을 지키듯, 힘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안에 쌓아두는 상태. '응립여수 호행사병'은 이렇게 힘을 아끼고 다스리는 방법을 가리킨다. 이것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살기 위한 방법인지, 아니면 바깥세상과 거리를 두려는 홀로서기인지 똑똑히 나누긴 어렵다. 소리를 막고 남을 살피며 자세를 낮추는 행동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것, 또는 오랜 불안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행동일 가능성도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틀로 일들을 나누고 값을 매긴다. 이런 방식에선 진짜 모습은 빠지거나, 오랜 시간 닳아 없어져 그저 희미한 흔적만 보일 뿐이다. 강함과 부드러움, 드러냄과 숨김은 어쩌면 하나의 틀을 이루는 기계 부품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 매가 움직이지 않는 모습, 사냥꾼이 마지막에 몸을 숨기는 움직임은 힘을 가장 잘 쓰려는 동물의 반응이다. 사람 또한 속으로 힘을 모으고 주변을 살피는 때를 거친다. 하지만 이렇게 가둬둔 힘이 언제나 좋은 관계를 만든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예측할 수 없어서 다른 이들에게 경계심을 주거나 무리에서 밀려나게 만들 수도 있다.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이 '숨겨진 힘'이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보는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규칙, 더 나아가 더불어 산다는 불안한 틀 자체를 파헤치는 일과 같다.
'응립여수 호행사병'이라는 암호는 깊이 숨겨둔 비밀 지식이 아니다. 날마다 부딪히는 삶의 밑바닥, 서로 부대끼는 곳에서 느껴지는 어떤 움직임에 가깝다. 자신을 덜 드러내고 바깥의 정보를 모으는 태도. 잘 살아남는 방법인가, 아니면 외딴 존재의 살아있다는 신호인가. 남에게 슬쩍 보여주는 작은 친절이 속의 힘을 잘 다스려 나온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거나, 세상이 더 나아질 거라는 예상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생각일 뿐이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이 얼마나 쓸모 있고 또 어떤 한계가 있는지 계속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 말고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