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틈과 복

by 조우성 변호사

[관계의 틈과 복]


마주 앉은 사람과의 사이에 놓인 투명한 공기. 그 안에는 말로 채워지지 않는 틈이 있다. 침묵의 길이, 시선의 방향, 혹은 숨소리의 간격 같은 것들. 우리는 그 틈을 메우려 애쓰거나, 아니면 못 본 척 외면한다. 그 틈에 대한 '너그러움'이란 무엇일까. 성급히 다가서지 않고, 그 간극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일까.

명심보감은 이르기를, "모든 일에 너그럽게 대하면 그 사람의 복은 저절로 두터워 질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이 틈을 너그럽게 대하면 나의 복이 두터워진다는 말인가. 관계에서 복이란 무엇일까. 끊어지지 않는 연결? 오해 없는 소통? 아니면 서로에게 기대는 단단함? 틈은 관계의 복을 해치는 것처럼 보인다. 멀어지게 하고, 단절을 만들고, 결국은 서로를 낯설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너그러움이 복을 두텁게 한단 말인가.

어쩌면 복은 관계의 틈이 사라진 상태가 아닐지도 모른다. 틈은 언제나 존재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타인은 끝내 타인이다. 우리는 서로의 전부를 알 수도, 가질 수도 없다. 너그러움은 그 틈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상대방의 침묵 속에 담긴 말하지 않는 이유를 캐묻지 않고, 시선의 방향이 나를 향하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며, 숨소리의 간격만큼의 거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다. 관계의 불완전함을 직시하는 용기다. 상대방의 그림자까지도 관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완벽한 일치나 끊임없는 이해를 기대하는 대신, 서로의 다름과 거리를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종류의 '두터움'을 얻게 되는 것 아닐까. 그것은 관계의 표면적인 매끄러움이 아니라, 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자주 관계의 복을 '문제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틈 없이 꽉 채워진 충만함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그러움은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다. 관계 속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 인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맺는 법을 배운다. 틈이 있는 채로 함께 서 있는 법을 배운다.

그렇다면 너그러움의 복은 결국, 관계의 불완전함 속에서 평온을 찾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마주 앉은 사람과의 사이에 놓인 틈을 너그러이 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외부의 기대나 이상적인 관계상에 덜 얽매이는 내면의 자유로움을 얻게 된다. 그 자유로움은 화려한 관계의 성취가 아니라, 어떤 균열에도 부서지지 않는, 스스로 두터워진 복인 것이다.

다시 마주 앉은 사람과의 사이에 놓인 틈을 본다.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며 말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의 너그러움이 그 틈을 받아들이듯, 나의 너그러움 또한 관계라는 공간 위에 어떤 무늬를 새겨나갈까. 그리고 그 무늬가 모여 어떤 '복'을 두텁게 할까. 그것은 어쩌면, 완벽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기묘한 이해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숨겨진 모습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