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라는 소화불량

by 조우성 변호사

[서른의 나에게] 성공이라는 소화불량



책상 한구석, 빛바랜 상패가 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밤을 새워 얻어낸 환호였고, 내 젊음을 증명하는 훈장이었다. 이제는 먼지를 그러모으는 묵직한 장식품일 뿐이다. 그 차가운 감촉을 만지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성공이란 꼭 영양분 같지만은 않구나. 때로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처럼 우리 속을 오래도록 더부룩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화석 같은 것일 수 있겠구나.


# 익숙함이라는 중력


서른 즈음의 우리는 곧잘 작은 성취들에 취한다. SNS에 찍히는 ‘좋아요’ 숫자, 연말 평가에 적힌 긍정적 피드백, 흠잡을 데 없이 마무리한 보고서 같은 것들. 그 즉각적이고 달콤한 보상들은 도파민처럼 터져 나와 우리를 안심시킨다. 이만하면 괜찮은 길을 가고 있다고, 이대로만 하면 안전할 거라고.


하지만 그 익숙함의 중력이 가장 무섭다. 안락한 오늘의 궤도에 우리를 단단히 묶어두고는, 거대한 세상의 강물이 저만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버린 줄도 모르게 만드니까.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는 없다고 했다. 세상도, 나도 어제와 다른데, 빛나는 성공의 기억만이 우리를 어제의 그 자리에 붙잡아두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것은 위안인 동시에 가장 교묘한 감옥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세상은 벽이 단단하고 목적지가 명확했다. 정해진 벽에 놓인 사다리를 누가 더 빨리 오르느냐의 경쟁이었다. 그 비유는 이제 낡았다. 지금의 세상은 하룻밤 사이에 지도가 바뀌는 거대한 미로에 가깝다. 그 미로에서 데이터를 쌓고 정해진 길을 가장 빨리 찾는 일은 이제 인공지능이 압도적으로 더 잘한다. 그 게임에 계속 머무른다면 우리는 결국 기계의 값싼 대체재가 될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역할은 사다리를 걷어차고, 미로 속에서 길 없는 길을 감각으로 더듬어 나가는 쪽이어야 하지 않을까. 정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붙들고 어둠 속을 헤매는 존재가 되는 것. 인간의 존엄성은 그 막막함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 살아있다는 감각


그렇다면 이 지독한 성공의 소화불량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거창한 계획보다는 삶의 태도를 바꾸는 작은 의식들일 것이다. 모든 건 아마 가장 환한 순간에 시작된다. 샴페인을 터뜨린 바로 그 순간, 스스로에게 슬쩍 찬물을 끼얹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이게 정말 내 실력일까, 아니면 운이 좋았을 뿐일까?’, ‘이 성공 때문에 나는 무엇을 보지 못하게 될까?’ 가장 달콤한 순간에 가장 쓴 약을 삼키는 일. 그 작은 균열이 성공이 오만함으로, 화석으로 굳어버리는 것을 막는다.


때로는 일부러 길을 잃는 용기도 필요하다. 늘 가던 길이 아닌 낯선 골목으로 들어서고, 서점에서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분야의 책을 괜히 들춰보는 것. 그런 무용한 시간들이 익숙한 생각의 근육을 비틀고, 예상치 못한 발견을 선물한다. 나와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반박하기보다 끝까지 귀 기울여 보는 것. 그의 세계는 어떤 논리로 이루어져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그렇게 기꺼이 나의 견고한 세계에 균열을 내줄 때, 새로운 생각은 그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운다. 그것은 견고한 성벽이 아니라 바람이 드나드는 집을 짓는 일과 같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 성공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과거에 주저앉히는가.


어제의 영광을 되새김질하며 사는 존재가 될 것인가. / 내일의 질문을 향해 걷는 존재가 될 것인가. / 우리는 흐를 것인가, 아니면 고여있을 것인가.


그 신진대사의 속도가, 결국 우리의 생존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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