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위한 처방전

by 조우성 변호사

<T공자의 까칠한 조언>(2)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위한 처방전


# 모니터 너머의 한숨


금요일 오후 4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의 한 스타트업 사무실. 디자인팀 이대리(31)의 마우스 커서가 허공을 방황했다. 월요일 아침 클라이언트 시연을 앞두고 마지막 제안서 디자인을 마무해야 할 시간. 바로 그때, 입사 6개월 차인 박사원(26)이 의자를 끌고 다가왔다.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대리님,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이것 좀 봐주실 수 있어요? 제가 한 건데, 뭔가 좀 이상해서요. 10분이면 될 거예요."


이대리는 박사원이 내민 USB를 꽂고 파일을 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10분은커녕 주말을 통째로 반납해야 할 수준이었다. 오타는 기본, 데이터 수치는 제멋대로였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정렬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박사원은 사람은 좋았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그의 선량함에 미치지 못했다. 이대리는 고민에 빠졌다. 이 엉망인 결과물을 외면하고 자신의 일을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좋은 선배’가 되어 그의 뒤치다꺼리를 할 것인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그것은 협업이 아니라 착취다


이 상황은 팀워크의 시험대가 아니다. 능력의 격차를 선의라는 이름으로 착취하는 구조적 문제다. 2025년 대한민국의 수평적 조직 문화는 종종 책임의 경계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능력 없는 개인의 구멍은 결국 유능하고 성실한 다른 누군가의 시간과 에너지로 메워진다. 박사원의 부탁은 도움 요청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본질은 자신의 책임을 이대리에게 전가하는 행위다. 이대리의 망설임은 연민이 아니다. 거절이 야기할 관계의 파탄을 두려워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에 갇힌 감정적 구속이다. 친절은 미덕이지만, 경계 없는 친절은 무능을 키우는 자양분일 뿐이다.


# 공자의 선 긋기


공자는 일찍이 모든 인간관계에 내재된 단계와 한계를 간파했다. 그는 모든 사람과 같은 길을 갈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도(道)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논어』「자한(子罕)」편에 실려 있다. 함께 공부를 시작하더라도,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 도달하는 경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의 언어다.


# 함께 갈 수 없는 길도 있다


전통적 해석은 이 구절을 학문과 수양의 단계론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공자의 T적 분별력과 효율성은 이 문장을 훨씬 더 현실적인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이것은 프로젝트 관리의 원칙이자, 관계 설정의 가이드라인이다. 모든 사람이 당신의 동료일 수는 있지만, 모든 동료가 당신의 파트너가 될 수는 없다는 선언이다. ‘함께 배운다(共學)’는 것은 같은 팀에 소속되어 기본 업무를 공유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함께 도에 나아간다(適道)’는 것은 핵심 목표를 향해 시너지를 내며 협력하는 파트너십의 경지다. 박사원은 이대리와 ‘공학’은 가능하지만, ‘적도’는 불가능한 사람이다.


주희(朱熹)는 『논어집주』에서 사람의 자질(資質)이 각기 다름을 언급했다. 이는 현대 조직행동론의 ‘역량 기반 협업(Competency-Based Collaboration)’ 모델과 정확히 맞닿는다. 성과는 개인의 역량에 기반하며, 협업은 각자의 역량이 조화를 이룰 때만 의미가 있다. 역량이 현저히 부족한 팀원에게 무한한 도움을 주는 것은 팀 전체의 효율을 저해하는 비합리적 자원 낭비다. 공자는 대학 시절 조별 과제의 악몽을 이미 2500년 전에 꿰뚫어 본 최초의 현실주의자였을지 모른다.


# ‘도움’과 ‘해결’ 사이의 경계선


이 원칙을 이대리의 상황에 적용해 보자. 박사원이 엉망인 PPT를 들고 와 "봐주세요"라고 할 때, T공자의 방식은 단칼에 거절하거나,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책임의 공을 다시 상대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대리라면 이렇게 대응하라.


첫째, 문제 전체를 떠안지 말고 구체적인 한두 가지만 지적한다. "박사원님, 5페이지의 그래프 데이터가 원본 엑셀 파일과 다른 것 같네요. 이 부분 먼저 확인해 보시겠어요?" 이는 ‘내가 해결해주겠다’가 아니라 ‘당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알려주겠다’는 신호다.


둘째, 해결책이 아닌 해결 도구를 알려준다. "전체적인 디자인 통일성은 회사 표준 템플릿을 사용하면 훨씬 나아질 겁니다. 제가 템플릿 파일 위치를 알려드릴게요."


셋째, 명확한 시간적 경계를 설정한다. "제가 지금 제 업무 마감이 임박해서 전체를 다 보긴 어렵고, 5분 정도 핵심 논리만 같이 보죠." 이것은 당신의 시간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 당신의 친절에 가격표를 붙여라


이제 당신은 ‘착한 사람’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당신의 성과와 조직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책임감이다.


도움 요청을 받으면, 그의 과거를 복기하라. 그가 과거에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는가. 아니면 습관적으로 당신에게 의존했는가. 평판은 중요한 데이터다.


거절의 언어를 미리 준비하라.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 업무에 집중해야 해서 어렵겠어.”, “이 부분은 박사원님이 직접 해결하며 배우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을 것 같아.” 와 같은 명확하고 단호한 문장을 구사하라.


‘대안’을 제시하되, ‘대행’해주지 마라.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곳을 알려주거나, 참고할 만한 다른 사람을 추천하는 선에서 멈춰라. 당신은 해결사가 아니다.


최소한의 협력만 제공하라. 반복적으로 팀 성과에 무임승차하는 동료에게는 조직이 규정한 최소한의 업무 협조 외에 어떤 사적인 도움도 제공할 의무가 없다.


거절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한 감정을 감수하라. 상대가 서운해하거나 당신을 나쁘게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은 그의 몫이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 관계의 비용을 치르지 않고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다.


# 거절은 관계의 파괴가 아니라 재정의다


모든 관계에는 거리가 필요하고, 모든 협업에는 한계가 있다. 무능한 동료의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은 그를 돕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장을 방해하고 조직을 병들게 하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태만이다. 거절은 배신이 아니다. 정직이다.


당신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시간의 가치를 상대에게 정직하게 알리는 행위다. 때로는 선을 긋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함께 갈 수 없는 길에서는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다.


(조우성 변호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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