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늘 그렇듯 결심의 계절이다. 마케팅팀 김민수 과장은 올해 서른아홉이다. 그는 1월 2일, 회사 앞 헬스클럽에서 1년 회원권을 결제했다. 60만 원이었다. 그는 새로운 자신을 선결제한 셈이다. 1월의 그는 성실했다. 땀은 정직했고, 근육은 미세한 비명을 질렀다. 2월이 되자 야근이 잦아졌다. 그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3월부터 헬스클럽은 그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공간이 되었다. 6월의 어느 날, 그는 문득 60만 원이라는 숫자를 떠올렸다. 돈이 아까웠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이끌고 러닝머신 위를 걸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연말정산 서류를 떼던 날, 그는 자신의 실패를 정산했다. 운동 한 번에 20만 원을 쓴 셈이었다.
김민수 과장의 의지가 유독 박약했던 것일까. 새해 첫날, 러닝머신의 차가운 손잡이를 잡으며 다짐했던 그의 결의는 모두 거짓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년 비슷한 실패의 각본을 반복해서 연기한다. 우리는 왜 미래의 자신을 그토록 과대평가하고, 현재의 나태함에는 이토록 관대한 것일까. 이것은 개인의 성실성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시간 인지 시스템에 깊이 새겨진 구조적 결함의 문제이다.
이 거대한 실패의 배후에는 현재편향(Present Bias)이라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현재편향이란, 미래의 더 큰 보상보다 현재의 작은 만족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인간의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우리의 뇌는 먼 미래의 이익을 계산할 때는 이성적이지만, 그 이익이 눈앞의 현실이 되면 즉각적인 감정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이 편향의 작동 원리는 세 겹의 시간 왜곡으로 설명된다. 가장 바깥 1층은 직관적 유혹이다. ‘오늘 저녁의 치킨 한 마리’가 ‘1년 뒤의 선명한 복근’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강렬한 쾌락을 약속한다. 2층에는 쌍곡할인(Hyperbolic Discounting)이라는 수학적 함정이 있다. 우리에게 1년 뒤의 100만 원과 1년 하고도 하루 뒤의 100만 원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오늘 당장의 100만 원과 내일의 100만 원은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진다. 시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미래 가치의 하락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가장 깊은 3층에는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가 자리한다. 우리는 미래의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며, 그 미래의 나는 온갖 유혹을 이겨낼 초인적인 의지를 가졌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새해의 ‘계획하는 나’와 매일 저녁을 살아가는 ‘실행하는 나’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레이브슨은 현재편향의 힘을 연금저축 프로그램을 통해 증명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지금 당장 저축액을 늘리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절했다. 현재의 소비를 줄이는 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을 바꾸자 결과는 극적으로 달라졌다. “다음번 월급 인상분부터 저축액을 자동으로 늘리는 프로그램에 가입하시겠습니까?” 놀랍게도 100명 중 78명이 이 제안에 동의했다. 고통은 미래의 내가 감당할 몫이고, 현재의 나는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는 만족감만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일 더 저축하기(Save More Tomorrow)’ 프로그램의 핵심 원리이다. 우리는 미래의 의무를 약속하는 데는 관대하지만, 오늘의 의무를 실행하는 데는 지독히 인색한 존재이다.
현재편향은 우리의 모든 일상을 지배한다. 경제활동 영역에서, 우리는 넷플릭스나 멜론 같은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지 못한다. ‘언젠가 보겠지’, ‘언젠가 듣겠지’라는 미래의 가능성 때문에 현재의 불필요한 지출을 용납하는 것이다. 조직에서는 연초에 세운 거창한 사업 계획이 1분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흐지부지된다. 장기적 목표의 가치보다 눈앞의 단기 실적 압박이라는 현재의 고통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내일부터는 꼭 아이에게 화내지 않겠다”는 부모의 다짐이 아이의 작은 실수 앞에서 맥없이 무너진다. 미래의 이상적인 부모상보다 현재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이 반복되는 실패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이 필요하다.
첫째, 과거의 나를 심문하라. 헬스장 1년 회원권 같은 장기 계약 전에, 지난 1년간의 내 행동 데이터를 냉정하게 복기해야 한다. ‘과거의 내가 하지 않았다면, 미래의 나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선택의 단위를 잘게 쪼개라. 연간 회원권 대신 월 단위 결제나 횟수권을 구매하라. 큰 결심을 작은 실행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내가 감당할 심리적, 경제적 비용을 극적으로 낮추어준다.
셋째, 시작의 문턱을 없애라.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오늘 딱 5분만 하기’ 규칙을 적용하라. 운동이든, 공부든, 글쓰기든 마찬가지이다. 5분이라는 시간은 현재의 내가 느끼는 저항감을 무력화시킬 만큼 사소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계획의 성패는 미래를 꿈꾸는 ‘계획하는 나’와 현재를 살아내는 ‘실행하는 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달려있다. 우리의 선택은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설계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나은 선택을 이끄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 컬럼에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