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갑옷을 벗기고, 사람의 급소를 공략하라

by 조우성 변호사

회사라는 갑옷을 벗기고, 사람의 급소를 공략하라


당신은 회사를 상대한다. 로고가 박힌 건물, 규정이 적힌 계약서, 공식 이메일 주소를 가진 시스템과 싸운다. 당신은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패배한다.

‘회사’라는 거대한 이름 뒤에 숨는 것은 약자의 가장 흔한 자기기만이다.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회사가 아니다. 당신의 제안서를 읽고, 당신의 전화를 받으며,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 단 한 명의 ‘사람’이다. B2B(Business to Business)라는 말은 허상이다. 모든 거래의 본질은 결국 H2H(Human to Human),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시스템을 움직이려 하지 마라. 시스템의 열쇠를 쥔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 관계는 감상의 영역이 아니다. 힘의 지렛대를 상대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 두는 정교한 기술이다.


갑옷 속의 또 다른 ‘을’을 보라


당신 앞에 앉은 갑의 담당자를 보라. 그는 당신에게는 갑이지만, 자신의 조직 안에서는 또 다른 ‘을’일 뿐이다. 그에게는 성과를 독촉하는 상사가 있고, 그를 견제하는 경쟁 부서가 있으며, 그가 책임져야 할 성과측정지표(KPI)가 있다. 그는 당신의 제안을 승인해주는 권력자가 아니라, 당신의 제안서를 들고 자신의 상사를 설득해야 하는 일개 병사에 가깝다.

그의 고충을 파악해야 한다. 그는 비용 절감의 압박에 시달리는가? 아니면 새로운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가? 이번 프로젝트의 실패가 그의 진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의 개인적 목표와 두려움을 읽어내야 한다. 그것은 동정이나 연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의 가장 아픈 곳, 가장 가려운 곳을 알아야 정확한 지점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의 담당자를 ‘넘어야 할 벽’으로 보는 순간 당신은 진다. 그를 ‘나의 목적을 위해 포섭해야 할 아군’으로 볼 때 비로소 길이 열린다.

인간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는 다섯 가지 원칙의 칼날이 필요하다. 첫째, 진정성이다. 계산된 친절은 칼날의 빛처럼 번득여 상대의 경계심을 깨운다. 둘째, 일관성이다. 필요할 때만 찾는 자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 우물은 가뭄이 들기 전에 파는 것이다. 셋째, 공감이다. 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당신이 그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동지임을 보여야 한다. 넷째, 기여다. 거래와 무관하게 그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제공하거나, 그의 다른 고민을 해결할 인맥을 연결해주는 행위는 최고의 신뢰 자산이 된다. 마지막으로, 경계다. 친밀함이 전문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 당신은 그의 친구가 아니라, 가장 유능하고 믿음직한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전장(戰場)의 기록: 계약서가 아닌 사람을 얻은 자


제조업체 E사의 김 과장은 대기업 F사의 구매팀 박 차장을 1년 넘게 뚫지 못했다. 박 차장은 원칙주의자로 소문이 자자했고, 모든 것을 규정과 숫자로만 판단했다. 그는 E사의 제안서를 번번이 퇴짜 놓았다. 이유는 늘 같았다. “귀사의 단가는 우리 기준보다 3% 높습니다.” 김 과장에게 박 차장은 뚫을 수 없는 철옹성과 같았다.

김 과장은 전략을 바꾸었다. 그는 더 이상 제안서의 숫자를 고치는 데 힘을 쏟지 않았다. 대신 박 차장이라는 ‘사람’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박 차장의 부서가 올해 회사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원가 절감 압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박 차장이 곧 있을 승진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단순 비용 절감을 넘어 ‘구매 프로세스 혁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내부 정보도 입수했다. 박 차장의 진짜 고민은 3%의 단가가 아니라, 자신의 상사에게 보여줄 ‘성과’와 ‘명분’이었던 것이다.

다음 미팅에서 김 과장은 제품 가격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중소기업들이 어떻게 구매 프로세스를 개선하여 실질적인 비용을 절감했는지에 대한 작은 보고서를 박 차장에게 건넸다. 보고서에는 E사와의 거래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도 많았다. 김 과장은 조용히 말했다. “차장님의 고민을 듣고 저희가 다른 파트너사들과 함께 스터디했던 자료를 정리해 봤습니다. 차장님의 과업에 작은 아이디어라도 될까 하여 가져왔습니다.”


박 차장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는 자신을 단순한 납품업체 담당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고민을 이해하려는 한 인간을 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김 과장은 박 차장에게 꾸준히 업계 동향이나 관련 자료들을 보내주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가격 흥정이 아니었다. 박 차장은 김 과장에게 부서 내의 어려움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김 과장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들을 제공했다.

석 달 뒤, F사의 신규 프로젝트 입찰이 공고되었다. E사의 견적은 여전히 경쟁사보다 조금 높았다. 그러나 최종 선정된 것은 E사였다. 박 차장은 자신의 상사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E사는 단순 납품업체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유일한 파트너입니다. 그들과 함께할 때 우리가 얻는 무형의 가치는 그 3%의 비용을 압도합니다.” 박 차장은 E사의 제품을 구매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싸움을 도와줄 ‘아군’을 선택한 것이다.


신뢰라는 이름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


기억하라. 회사 대 회사의 거래는 환상이다. 모든 결정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당신의 노력을 시스템을 설득하는 데 쏟지 마라. 시스템의 문을 쥔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갑의 직함을 보지 마라. 그의 책상 위에 놓인 고뇌를 보라. 그가 조직 안에서 겪는 압박과 그의 개인적인 욕망을 꿰뚫어 보라. 그리고 그의 싸움에서 가장 유용한 무기가 되어주어라. 그것이 신뢰의 화폐를 쌓는 유일한 길이다. 힘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당신이 얻어야 할 것은 계약서의 도장이 아니라, 당신 없이는 이길 수 없다고 믿게 된 한 사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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