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독서는 실패하지 않았다

by 조우성 변호사

[구멍 난 기억을 위한 변명 - 당신의 독서는 실패하지 않았다]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대부분 잊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독서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스승은 답 대신, 며칠 뒤 강가에서 낡고 구멍 숭숭한 체(篩)로 물을 떠오라 명했죠. 제자는 백방으로 애썼지만 물 한 방울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좌절한 그에게 스승이 말했습니다. “실패한 것이 아니다. 체를 보아라.” 제자가 본 것은 먼지와 때가 씻겨나가 환하게 빛나는 체였습니다. 스승은 말했습니다. “독서도 그렇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해도, 그 과정에서 너의 마음은 씻기고 영혼은 새로워지며, 너는 안에서부터 변하고 있단다.”

이 낡은 이야기가 ‘지식의 투자수익률(ROI)’을 따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은 그래서 더 불온하고, 또 절실합니다.


# 현대라는 이름의 체(篩)


우리 모두 각자의 체를 들고 지식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체는 훨씬 더 촘촘하고 거대하며, 강물은 ‘정보’라는 이름의 홍수가 되어 우리를 덮칩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SNS 피드와 뉴스레터, 꼭 봐야 한다는 온라인 강의와 칼럼들까지. 어느새 지식은 생존과 성공을 위한 도구가 되었고, 독서는 ‘읽어치워야 할’ 과업 목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구멍으로 새어 나가는 지식을 한 방울이라도 더 붙잡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밑줄을 긋고, 요약하고, 핵심만 추린 콘텐츠를 소비하며 ‘지식 변비’를 자초하죠. /우리는 가장 똑똑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가장 불안한 지성을 가졌다./ 기억되지 않는 지식은 쓸모없는 것, 실패한 독서로 치부됩니다. 결국 우리 손에 남는 건, 저 제자와 똑같은 좌절감뿐입니다.


# 소유에서 경험으로


스승의 가르침은 여기서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 독서의 진짜 목적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씻어내는 것’에 있다는 말. 이건 지식을 바라보는 판을 바꾸는 생각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경험으로, 축적이 아니라 대사(代謝)로 말이죠. /독서는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지성이란 강물에 온몸을 헹구는 경험 그 자체다./ 책의 모든 문장을 기억하진 못해도, 어떤 구절이 남긴 감정의 무늬, 세상을 보게 한 새로운 각도, 내 안의 편견을 깨뜨린 충격의 파편 같은 것들은 고스란히 남습니다. 그건 기억 창고에 박제된 정보가 아닙니다. 내 세포 속으로 스며들어 어제의 나와는 다른 존재로 만들어주는, 말 그대로 영혼의 양식이죠.


# 지성적 신진대사의 기쁨


저는 이걸 ‘지성적 신진대사(Intellectual Metabolism)’라 부르고 싶습니다. 음식을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밥 한 공기는 위장에서 사라져도, 그 영양분은 우리 몸 어딘가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텍스트들은 우리의 의식 위를 흘러가며 생각의 근육을 단련시키고 감성의 결을 다듬어줍니다. /지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 ‘나’라는 토양을 바꾼다./ 당장의 쓸모를 따지는 건, 밥을 먹으며 어느 영양소가 정확히 어떤 세포로 갔는지 추궁하는 것과 같습니다. 중요한 건 그 쓸모없어 보이는 과정들을 통해, 나라는 그릇 자체가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다는 사실 아닐까요?


# 남아있는 것들의 가치


/결국 한 인간의 깊이란, 그가 무엇을 기억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통과시켰느냐로 결정된다./ 수많은 강물이 훑고 지나간 조약돌은 매끈하고 단단합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텍스트를 통과해온 영혼에는 쉽게 닳지 않는 고유한 빛이 남게 마련입니다. 지식은 체를 빠져나가도, 지혜는 시간의 퇴적물처럼 남는 법이니까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읽고, 또 잊어버리는 모든 행위의 진짜 쓸모일 겁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입니다. /당신은 오늘도 지식을 ‘채우려’ 애썼는가, 아니면 당신의 영혼을 ‘씻어내려’ 했는가?/ 그 구멍 난 체를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구멍이야말로 당신을 더 깊은 당신으로 만들어주는 숨구멍일 테니까요.


(작성 : 조우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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