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증후군의 진화심리학

by 조우성 변호사

[인간본성의 이해] '나쁜 남자' 증후군의 진화심리학


서른한 살 박선하 대리는 목요일 저녁 9시, 서울숲 근처 와인바에서 남자의 눈을 보았다.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은 그는 약속 시간에 이십 분 늦었다. 사과는 없었다. 대신 그는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선하의 가슴이 뛰었다.


두 시간 뒤, 그녀는 택시 안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답장이 없었다. 읽음 표시만 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연락이 뜸할 것이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을 것이며, 자신을 힘들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데도 가슴은 계속 뛰었다.


일주일 전 강남역 맞선 카페에서 만난 남자가 떠올랐다. 대기업 김 과장. 성실한 외모, 정확한 시간 약속. 그는 식사 내내 그녀의 말을 경청했고, 데이트 코스를 미리 준비했으며, 다음 만남을 정중히 제안했다. / 선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

그런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왜 나는 나를 힘들게 할 남자에게 끌리는가? 왜 안전한 선택이 지루하게 느껴지는가?


# 20만 년 된 선택의 딜레마


이 반응은 우연이 아니다. 뇌는 이유를 알고 있다.

10만 년 전 사바나에서, 우리 조상 여성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자원은 제한되어 있었다. 보호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녀들은 배우자를 선택해야 했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는 1989년 37개 문화권을 조사했다. 여성의 배우자 선택 기준이 문화를 초월하여 일관된 패턴을 보였다. 그의 저서 『욕망의 진화The Evolution of Desire』(1994)에 따르면, 여성은 두 가지 전략 사이에서 진화적 타협을 해왔다.


# 장기 전략과 단기 전략


장기 배우자 전략은 안정성을 추구한다. 자원 제공 능력, 양육 의지, 헌신성. 이것이 자녀의 생존율을 높인다.


단기 배우자 전략은 다르다. 여기서 뇌는 유전적 적합도genetic fitness의 지표를 계산한다. 위험 감수성risk-taking, 신체적 건강성, 사회적 지배력dominance. / 이것들은 '좋은 유전자good genes'의 신호로 작동한다. /

진화생물학자 랜디 손힐Randy Thornhill과 스티븐 갱스태드Steven Gangestad는 1999년 『배우자 선택의 진화Evolutionary Psychology of Human Mating』에서 이를 실증했다. 배란기 여성들은 남성적 얼굴 특징과 대칭적 신체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이는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면역 체계의 강건함을 나타낸다.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 역시 유전적 건강성의 신호다. 약한 개체는 위험을 감수할 여력이 없다.


# 현대 서울의 미스매치


문제는 환경이 변했다는 것이다.

플라이스토세(약 258만년 전부터 11,700년 전까지 약 257만년 동안의 시기를 일컫으며, 신생대 제4기의 거의 대부분의 시기를 차지) 시대의 '좋은 유전자' 신호가 현대 서울에서는 '나쁜 남자' 행동으로 나타난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 연락을 뜸하게 하는 것, 다른 여성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 과거에는 자원 경쟁에서 이긴 남성의 여유로 보였을 행동들이다. 지금은 그저 무책임함일 뿐이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연봉 1억 2천 개발자는 사바나의 사냥꾼과 다른 신호를 보낸다.


# 정말 본능만의 문제일까?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모든 여성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가?

그렇지 않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그의 1979년 저서 『구별짓기Distinction』에서 이를 '아비투스habitus'로 설명한다. 가족 환경, 교육 수준, 문화적 자본이 배우자 선택 기준을 형성한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여성은 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 연구자 신디 하잔Cindy Hazan과 필립 쉐이버Phillip Shaver는 1987년 연구에서 유아기 애착 유형이 성인의 연애 패턴을 예측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화의 영향도 크다. 한국 드라마의 '재벌 2세' 서사, 청담동 클럽 문화, 인스타그램의 '럭셔리' 이미지. 이것들은 특정 남성상을 낭만화한다. 순전히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다.


# 이론의 한계


페미니스트 생물학자 앤 포스토-스털링Anne Fausto-Sterling은 2000년 저서 『몸 만들기Sexing the Body』에서 진화심리학이 젠더 고정관념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위험을 경고했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는 설명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은 『유전자도 환경도 아니다Not in Our Genes』(1984)에서 유전자 결정론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인간 행동은 단일 메커니즘으로 환원할 수 없다.

진화적 설명이 부적절한 선택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내 본능이니까"는 변명이 될 수 없다. / 진화는 경향성을 만들지만, 문화와 의식적 선택은 그 표현 방식을 결정한다. /


# 본성을 아는 자유


결국 매력은 단일한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

진화적 메커니즘은 배경을 제공하지만, 개인의 역사와 선택이 전경을 채운다.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것은, 위험 신호를 유전적 적합도로 읽는 오래된 회로가 여전히 작동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회로를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끌림과 선택을 분리할 수 있다. 가슴이 뛰는 것과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 본능은 첫 반응을 만들지만, 지속 가능한 관계는 의식적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

서울숲 와인바의 선하는 자신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20만 년 된 신호 체계라는 것을. 그리고 2025년의 선택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본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본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첫걸음 아닐까?


나쁜남자.jpg


* 요약 인포그래픽

https://codepen.io/odpyjxhw-the-decoder/full/vELqMqK


매거진의 이전글왜 친구의 승진 소식이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