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후 2시 14분. 경기도 판교 G사의 12층 회의실은 차가웠다. 형광등 불빛이 박 대리의 빈 커피잔을 하얗게 비췄다. 그는 서른넷이다. 김 팀장이 프레젠테이션 스크린 앞에서 열변을 토했다. "다음 분기 핵심 전략입니다." 익숙한 도표가 떴다. 박 대리가 2주간 밤을 새워 만든 자료였다. 어젯밤 11시, 퇴근 직전 보고했던 바로 그 파일이다.
김 팀장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제가 이번에 새롭게 고안한 '넥스트-Q' 모델입니다." 박 대리의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피가 역류하는 느낌. 목구멍이 뜨거웠다. 옆자리의 이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몰랐다. 스크린의 파란색이 유독 눈을 찔렀다. 지난 2주간의 야근, 주말에 아내에게 보낸 "먼저 자"라는 카톡, 편의점에서 삼킨 차가운 삼각김밥의 맛이 일순간에 스쳤다.
이건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었다. 존재의 말소였다. 김 팀장은 박 대리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완벽한 무(無)가 되었다. 임원들의 박수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인사고과', '라인', '눈치'라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는 다른 동료들처럼 어색하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 왜 나의 공헌을, 나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고 이 차가운 의자에 앉아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가? /
# 오래된 서열의 기억
박 대리의 이 부조리한 침묵은, 개인의 나약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뇌는 이 상황을 안다. 진화는 답을 가졌다. 수십만 년 전 플라이스토세의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우리 조상은 50~150명의 작은 무리를 이루어 살았다. 자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식량, 안전한 잠자리, 그리고 번식의 기회까지. 이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기준은 명확했다. '지배 서열(Dominance hierarchy)'이다.
서열은 생존의 순서였다. 높은 지위는 더 많은 식량과 더 나은 짝을 의미했다. 더 많은 유전자를 남길 기회였다. 뇌는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발달시켰다. 김 팀장의 행동이 바로 이 오래된 본능의 현대적 발현이다. 그는 자원을 독점(Resource monopolization)하고 있다. / 아이디어는 21세기의 사냥감이며, 공헌은 지위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자원이다. / 김 팀장은 박 대리의 아이디어를 가로챔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서열을 증명한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1982년 출간한 기념비적 저서 『침팬지 폴리틱스(Chimpanzee Politics)』에서 이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침팬지 무리의 알파 수컷은 단순히 힘이 세서 그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 그들은 동맹을 맺고, 경쟁자의 공헌을 무시하며, 잠재적 위협이 되는 아랫것들을 교묘하게 억압한다. '정치'를 하는 것이다. 박 대리의 아이디어가 뛰어날수록, 김 팀장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유능한 부하는 기회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위협이다. 그 위협을 제거하고 공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이 전략의 문제는,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환경에서 불거진다는 점이다. 20만 년 전의 뇌가 판교의 유리 건물 안에서 21세기의 과제를 수행하려 할 때 '진화적 미스매치'가 일어난다. 현대 조직은 협력과 창의성, 공정한 보상을 통해 더 큰 성과를 낸다. 하지만 지위 위협을 느낀 뇌는 여전히 사바나의 논리를 따른다. / 압축 성장과 수직적 위계질서에 익숙한 한국의 조직 문화는 이 원시적 본능의 놀이터가 되기 쉽다. / '라인'을 만들고, 공을 독점하고, 위협이 될 만한 부하를 찍어 누르는 행위는, 어쩌면 김 팀장 개인의 인격적 결함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된 서열 유지 본능의 어두운 발현일지 모른다.
# 본능인가, 문화인가?
하지만 모든 상사가 아이디어를 훔치지는 않는다. 김 팀장의 행동을 20만 년 전 본능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인간의 행동이 '아비투스(Habitus)', 즉 개인이 속한 환경에서 체화된 무의식적 성향의 결과라고 보았다. 김 팀장의 행동은 생득적 본능이 아니라,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극도의 경쟁적 조직 문화와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성과를 취해도 된다'는 권위주의적 규범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학습된 '습속'일 수 있다. 공헌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평적 협력을 중시하는 조직(북유럽의 스타트업이나 일부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는 김 팀장 같은 행동이 즉각적인 처벌과 사회적 고립을 초래한다. 문화가 본능의 표현을 억제하거나, 혹은 조장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설명에는 위험한 지점이 있다.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진화심리학이 '적응주의 편향(adaptationist bias)'에 빠져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모든 인간의 행동을 과거의 적응적 이득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검증 불가능한 '그럴듯한 이야기(just-so story)'를 지어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김 팀장의 착취를 '지배 서열 본능'으로 설명하는 순간, 우리는 박 대리가 겪는 현재의 불의한 권력 구조와 조직 내 부조리를 정당화할 위험에 처한다.
/ '그것이 본성'이라는 말은 '그래도 된다'는 변명이 되기 쉽다. / 이것이 '자연주의적 오류'다. 자연의 작동 방식(is)이 인간 사회의 규범(ought)이 될 수는 없다. 진화가 우리에게 지위를 추구하는 성향을 물려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화는 동시에 공감하고, 불의에 분노하며, 더 나은 시스템을 상상할 거대한 전두엽 또한 선물했다. 본성은 성향의 초안일 뿐, 행동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문화와 개인의 선택은 그 초안을 얼마든지 수정한다.
#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
결국, 상사의 아이디어 가로채기는 단순한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지위 보존이라는 20만 년 된 본능이 현대의 경쟁적 조직 문화와 만난 비극적 접점이다. 김 팀장은 자신의 불안과 지위 위협을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방어하고 있다.
김 팀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기보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용서하거나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자는 것이다. 이 오래된 본능의 작동 방식을 알면, 비로소 이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 공헌을 투명하게 기록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 지위가 아니라 실제 성과에 공정하게 보상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
박 대리 또한 선택해야 한다. 침묵 속에서 분노를 삼킬 것인가, 아니면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다른 전략을 택할 것인가.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기여를 명확히 기록하고, 동료들과 수평적 동맹을 강화하며,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그 본성의 노예가 되지 않을 첫 번째 기회다. / 우리의 싸움은 상사 개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재된 오래된 본능, 그리고 그 본능을 부추기는 낡은 시스템과의 싸움이다.
* 요약 인포그래픽
https://codepen.io/odpyjxhw-the-decoder/full/JoGQq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