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쓰면 왜 괴물이 되는가: 악플의 심리학

by 조우성 변호사

[인간본성의 이해] 가면을 쓰면 왜 괴물이 되는가: 악플의 심리학(진화심리학적 관점)


1. 어둠 속의 손가락질


목요일 밤 11시 40분, 마포구 공덕동의 좁은 오피스텔. 서른둘 김민석 대리는 침대에 구겨져 있었다. 3차 회식까지 이어진 박 부장의 꼰대 같은 훈계가 아직도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윙윙거리는 공기청정기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방, 그는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켰다.

엄지손가락이 멈춘 곳은 한 유명 헬스 유튜버의 사진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글귀 아래, 5성급 호텔 수영장에서 찍은 번들거리는 근육 사진이 보였다.


순간, 김 대리의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질투라고 하기엔 좀 더 지저분하고, 화라고 하기엔 찌질한 감정이었다. 하루 종일 "네, 알겠습니다"라고 굽신거리며 보낸 자신의 하루와 저 사진 속의 당당함이 너무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익명 계정으로 로그인을 바꿨다. 프로필 사진도 없는 회색 동그라미,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투명 망토'였다.


"약물 써서 만든 몸으로 노력 타령 좀 그만하시죠. 역겨우니까."


전송 버튼을 꾹 눌렀다. 차가운 액정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댓글이 올라가는 그 짧은 찰나, 김 대리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 가면을 쓰면, 우리는 평소엔 상상도 못 할 용감한 겁쟁이가 된다. /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도 눈치 보며 줍던 그 착한 김 대리가, 왜 이 작은 스마트폰 안에서는 사나운 사냥개가 되는 것일까.


2. 고장 난 '평판 CCTV'


사실 이런 행동은 우리 뇌가 착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아주 먼 옛날, 20만 년 전 원시 시대 우리 조상들을 생각해 보자. 그때는 모두가 서로를 아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옥스퍼드 대학의 로빈 던바 교수는 "인간의 언어는 원래 '뒷담화'를 위해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누가 착한지, 누가 나쁜 놈인지 정보를 나누는 게 생존에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남을 함부로 공격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쟤 성격 파탄자래"라는 소문이 돌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혼자서는 맹수에게 잡아먹히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는 우리 뇌 속에 '평판 계산기' 같은 장치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쟤를 때리면 속은 시원하겠지? 하지만 내 평판이 깎이면 더 손해잖아."


이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우리의 주먹과 입을 단속했다. 마치 머릿속에 '사회적 CCTV'가 켜져 있는 셈이었다.


문제는 인터넷 세상이 20만 년 전과는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인터넷 게시판은 서로 모르는 수백만 명이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광장이다. 이곳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내 행동을 기억할 'CCTV'도 없다. / 인터넷이라는 숲에서 우리 뇌의 '평판 계산기'는 전원이 꺼져버린다. /


"어라? 내가 욕을 해도 아무도 나인 줄 모르네? 내 평판도 안 깎이네?"


뇌는 이 상황을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니 유전자에 새겨진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본능만 남는다. 화면 속 저 잘난 사람은 나랑 상관없는 '남'이니까, 물어뜯어도 되는 만만한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김 대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낡은 원시인의 뇌가 최신 스마트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오작동'인 셈이다.


3. 방아쇠를 당긴 건 누구인가


그렇다고 해서 "아, 내 뇌가 원래 그렇다"라고 핑계를 댈 수는 없다. 익명이라고 해서 모두가 악플러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같은 상황에서도 "힘내세요"라고 응원을 남기거나, 그냥 조용히 지나간다.


유명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모든 행동이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익명 뒤에 숨어 공격하는 건 생존 본능이라기보다, 그냥 뇌가 복잡해지면서 생긴 나쁜 '부작용'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르원틴이라는 학자도 "유전자 탓만 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 진화가 우리 손에 총을 쥐여줬다면, 방아쇠를 당기게 만든 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


한국 사회를 돌아보자. 숨 막히는 비교, 1등만 기억하는 경쟁, 갑질에 시달리는 직장 생활... 이 거대한 압력밥솥 같은 현실 속에서 김 대리의 스트레스는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그러다 '익명'이라는 숨구멍을 만나자, 억눌린 화가 폭발한 것이다. 김 대리의 손가락을 움직인 건 유전자라기보다, 병든 사회가 그의 마음에 심어놓은 시한폭탄일지도 모른다.


4. 거울 앞에 서는 용기


결국 악플은 남을 향한 공격이 아니다. 사실은 "나 지금 너무 힘들고 비참해"라고 외치는 자기 자신을 향한 비명이다. 안전한 가면 뒤에 숨어서만 낼 수 있는 비겁한 용기일 뿐이다.

물론 우리 뇌의 낡은 경보 장치는 앞으로도 계속 울릴 것이다. "공격해! 아무도 안 보잖아!"라고. 하지만 그 본능을 멈춰 세우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람'이 할 일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모니터라는 차가운 벽 뒤에 숨어 돌을 던지는 원시인으로 남을지, 아니면 그 벽을 거울삼아 내 표정을 들여다볼지를.

/ 본능을 안다는 건, 본능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


김 대리의 손가락이 다시 움찔거릴 때, 그가 느껴야 할 건 통쾌함이 아니라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이어야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드러나는 모습, 그게 어쩌면 그 사람의 진짜 맨얼굴일 테니까.

/ 당신의 가면 속 얼굴은, 지금 웃고 있는가. /


가면.jpg


* 요약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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