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문이 열렸다. 테이블 끝에 앉은 임원의 자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른팔은 의자 등받이 위로 느슨하게 걸쳐져 있고, 왼손은 테이블 모서리를 무심히 두드린다. 다리는 넓게 벌어져 있다. 상체는 살짝 뒤로 젖혀진 채 턱은 약간 들려 있다. 그가 차지한 공간은 그의 실제 체구보다 훨씬 넓어 보인다. 반대편 협상 상대는 어깨를 좁히고 팔을 몸에 붙인 채 앉아 있다. 같은 의자인데, 한쪽은 왕좌처럼 보이고 다른 쪽은 그냥 의자다. 말 한마디 나누기 전부터 이미 판이 갈렸다.
# 자세가 호르몬을 바꾼다
광활한 자세는 단순히 편하게 앉은 게 아니다. / 이건 영역에 대한 선언이다. /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에이미 커디 교수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2분간 몸을 넓게 펼친 자세를 취한 사람들의 혈액을 분석했더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평균 20% 올라갔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25% 떨어졌다. 움츠린 자세를 취한 그룹은 정반대였다. / 자세가 감정을 표현하는 걸 넘어서, 실제로 우리 몸속 화학 작용을 바꾼다는 얘기다. /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더 명확하다. 영장류 무리에서 알파 수컷은 항상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침팬지 리더는 나뭇가지에 몸을 크게 펼쳐 앉는다. 도전받으면 더 크게 부풀린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수천 년간 우리는 이 코드를 몸에 새겼다. 넓은 공간 점유는 "나는 위협받지 않는다"는 신호다.
뇌과학자들의 발견은 더 흥미롭다. 우리 뇌의 편도체는 상대방의 광활한 자세를 보는 순간 즉각 반응한다. 의식적 판단 이전에 일어나는 자동 반응이다. / 0.3초 만에 "이 사람은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추론한다. / 이 추론은 이후 모든 대화에 영향을 미친다.
# 실리콘밸리의 교훈
실리콘밸리의 한 스타트업 CEO 이야기다. 벤처 캐피탈리스트와의 미팅이었다. 상대는 회의 내내 의자를 뒤로 젖힌 채 한쪽 다리를 다른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팔은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 CEO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준비한 수치와 전략을 설명하는 내내, 왠지 모르게 내 제안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원래 계획보다 더 많은 지분을 내놓고 말았다."
반대 경우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의 한 파트너는 의도적으로 광활한 자세를 활용한다고 했다. "나는 항상 회의실에 먼저 도착한다. 테이블 중앙 자리를 선점한다. 클라이언트가 들어오면 편안하게 팔을 펼친 채 그들을 맞는다. / 이 2분의 비언어적 세팅이, 이후 8시간 워크샵에서 누가 전문가인지를 각인시킨다. /"
2016년 미국 대선 토론 장면이 떠오른다.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이 말할 때 무대를 넓게 걸어다녔다. 공간을 장악했다. 비언어 소통 전문가들은 이것이 시청자의 무의식에 "누가 더 강한가"를 심었다고 분석했다.
# 문화를 읽어야 한다
하지만 문화를 읽어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 같은 고맥락 문화권에서 과도한 공간 점유는 오만함으로 비친다. 삼성의 한 임원은 "미국 본사와의 화상 회의에서는 광활한 자세가 자신감이지만, 국내 회의에서는 예의 없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쓸 것인가
상대가 광활한 자세를 취할 때, 먼저 구분해야 한다. 의도적인 권위 과시인가, 진짜 편안한 상태인가. 진정한 자신감은 유연하다. 의도적 과시는 경직되어 있다. 상대의 자세가 대화 주제에 따라 변하는지 봐라.
상대의 공간 점유에 무의식적으로 위축되지 마라.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세 전염"이라 부른다. 상대가 넓게 펼칠수록, 당신은 더 움츠러들 위험이 있다. 의식적으로 당신의 공간을 지켜라.
협상에서 상대가 갑자기 광활한 자세로 바꾼다면? 이건 심리적 우위를 선점하려는 시도다. 직접 지적하기보다, 당신도 자연스럽게 자세를 조정해서 균형을 맞춰라.
당신의 자세를 전략적으로 쓰고 싶다면,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협상 2분 전에 파워 포즈를 취해라. 화장실이나 빈 회의실에서. 이건 플라시보가 아니다. 실제로 호르몬이 바뀐다.
상황에 맞는 적정선을 찾아라. 초기 미팅에서는 개방적이되 과하지 않게, 신뢰가 쌓인 후에는 더 편안하게. 문화적 맥락을 늘 고려하라.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억지로 펼친 자세는 어색하다. 내면의 자신감을 키우는 게 먼저다. 자세는 그 결과로 따라온다.
/ 영역을 지배하는 자가 대화를 지배한다. 하지만 진짜 리더는 공간을 독점하지 않는다. / 상황에 따라 확장과 수축을 조절한다. 타인에게도 공간을 허락한다. 광활한 자세는 도구다. 언제, 어떻게 쓸지 아는 것이 진정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