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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Oct 07. 2015

군주와 신하는 이해관계로 뭉쳐있는 관계다

● 인용문


무릇 군신관계에는 육친지정(肉親之情)이 있을 리 없다.

정직하게 일해서 정당한 이득이 주어지면 신하가 힘을 다해 군주에게 봉사할 것이다.

다른 한편 정직하게 일해도 안정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신하는 뿔뿔이 개인의 이익만을 도모하면서 군주에게 손해를 끼치게 마련이다.

- 한비자 간겁시신(姦劫弑臣) -


● 해설


# 1


삼화건설의 곽호원 부장.

그는 그 특유의 호방함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윗사람들로부터는 무한신뢰, 부하직원들로부터는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언제나 개인적인 입장보다는 회사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그였기에, 후배들은 한 번씩 술자리에서 농담삼아 ‘아니, 부장님, 지금이 1970년대인 줄 아십니까?’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때마다 곽부장은 ‘나는 그렇게 회사생활을 해야 한다고 선배들에게 배웠어.’라면서 너털웃음을 짓는 그였다.


곽부장이 주로 담당하는 일은 건설사와 대립관계에 있는 여러 시행사들과 첨예한 협상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건설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도 자신의 몫을 더 챙기기 위해서 건설사와 시행사는 사사건건 이해관계의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 과정에서 삼화건설을 위해 다양한 공격, 방어방법을 만들고 법적으로 조언을 계속해 왔다.


그런데 진행하는 건설사업의 분양실적이 저조해지고 많은 부수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당초 일등 공신이었던 곽부장은 점점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 돼갔고, 급기야 곽부장은 자회사로 전보발령이 났다.

승승장구하던 곽부장에게 이러한 전보발령은 참으로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했건만 돌아오는 보상이 고작 자회사로의 전보발령이라니.


# 2


곽부장은 결국 사표를 제출했고, 잠시 다른 곳에서 일을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곽부장이 그 동안 삼화건설과 첨예하게 대립관계에 있던 시행사 쪽을 위해 일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지금까지는 시행사를 상대로 다양한 공격, 방어논리를 같이 개발했던 곽부장이 이제는 시행사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은, 마치 이쪽 편의 전략, 전술을 모두 파악한 장수가 적진에 투항하여 적을 위해 작전 조언을 하는 것에 비유할 만한 일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삼화건설의 관련자들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조직에 대한 충성을 그렇게 강조하며, 의리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던 곽부장이었기에, 곽부장의 이러한 선택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삼화건설의 옛 부하가 곽부장에게 그 사실을 따졌을 때, 곽부장은 이런 말을 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


# 3


CEO의 입장에서는 곽부장의 행위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거나 비난할 수 있을까? 과연 곽부장의 그러한 행위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비자는 군신관계에는 육친지정(肉親之情)이 있을 리 없다고 잘라 말한다. 피를 나눈 관계에서도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 등을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하물며 육친이 아닌 군신관계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브루터스와 시저

애정 자체도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하물며 정직하게 일해도 보람이 없고, 애써 공헌해도 억울한 일만 당하게 된다면 그로부터 초래될 것은 부정부패 아니면 기강문란, 나아가 각자도생 뿐일 것이다.


통치자, 경영자가 스스로 형평의 원칙을 위반하면서 봉사에 관한 도덕적 설교를 늘어놓으면서 ‘인정’과 ‘의리’에 호소한다면 이는 볼쌍사나운 처량한 리더십의 현주소를 보여줄 뿐이다.



# 4


한비자는 ‘식사편’에서 좀 더 적나라한 표현을 써가면서 군신관계를 논한다.


군주는 자기의 이해를 계산해 신하를 기르고, 신하는 자기의 이해를 계산해 군주를 섬긴다. 이처럼 군자와 신하는 서로 계산을 한다.

신하는 자신의 몸을 해치면서까지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을 하지 않고, 군주는 나라를 해치면서까지 신하를 이롭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군주와 신하는 계산에 따라 원칙을 결합하는 자들이다.

이런 군신과계의 섭리를 이해한다면, 조직원의 이탈과 각자도생의 현상이 CEO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배신과 불의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과 정당하지 못한 처신에 더 주목하는 것이 진정한 CEO가 취해야 할 조치이리라.


● 지혜 한자락


1. 신하가 자신의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조직이 아닌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비난하기 어렵다.


2. 의리와 정에 호소하여 신하의 충성을 담보받으려 하지 말라. 이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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