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시 인민은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지, 인의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자로 말하면 천하의 성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수양도 쌓고 도덕을 일깨우면서 여러 곳에서 유세를 거듭했다.
그렇지만 복종해 따라 온 사람은 70명의 제자뿐이었다.
생각건대 인의를 받들고 실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하가 넓다지만, 따라온 사람은 70명에 그쳤는데, 그나마 인의를 다 한 사람은 공자 한 명 뿐이었다.
한편 노나라의 애공(哀公)은 보잘것 없는 군주였다. 그럼에도 나라를 다스렸으니, 그 영내에서 신하 아닌 자가 없었다.
애당초 인민은 권력에 복종하며, 권력이야말로 사람들을 다스리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조차도 신하로 되었으며, 애공이 도리어 군주였던 것이다.
물론 공자는 애공의 인의를 우러러본 것이 아니며, 오직 그 권력에 복종했을 따름이다.
인의를 따지자면 공자가 애공에게 복종할 이유는 없지만, 권력으로 따져본 즉, 애공이 공자를 신하로 삼은 것이다.
요즈음 학자라는 사람들이 군주들에게 유세하는 것을 보면, 필승의 권세(權勢)를 아뢰지 않고, 인의의 실천에 애쓰기만 하면 천하를 장악할 수 있을 듯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군주더러 공자의 수준에 꼭 도달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동시에
세상의 범인(凡人)더러 모두 공자의 친제자처럼 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절대로 이루어질 까닭이 없다.
- 한비자 오두 편-
공자가 어찌 애공보다 못한 사람이었을까? 공자는 거의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세력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힘을 펼치지 못한 것은 '권력'과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애공이 공자보다 훌륭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애공이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권위와 세력에서 나왔다는 '현실'을 강조한 것이다.
즉 '인의(仁義)' 역시 군주에게 중요한 덕목일 수 있지만 이 덕목 역시 권위와 세력이 바탕이 된 이후에라야 의미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논의와 아주 흡사하다.